세계 1위 종합 식품회사 네슬레의 한국법인이 국내에서 3000원대 저가 스타벅스 커피를 판매하는 소형 매장 설립을 추진한다. 네슬레가 2018년 스타벅스로부터 사들인 소매점 판매 권리를 이용해 골목상권을 노리겠다는 구상이다.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네슬레 한국법인은 전국 중소형 마트와 식료품 매장, 일부 대학, 호텔 등과 스타벅스 브랜드의 소형 커피 매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신선식품 유통업체 A사와 유기농 브랜드 B사 등이다.
네슬레 한국법인은 이들이 보유한 기존 매장의 유휴 공간에 ‘숍인숍’(매장 안의 매장) 형태로 테이블 2~3개 정도의 소형 매장을 입점시키겠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임차료를 절감하고 최소 인력으로 운영하면 커피 가격을 3000원대로 낮춰 직영점과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세권’이 아니라 스타벅스가 진출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소형 매장 커피는 스타벅스 브랜드로 판매되고 직영점과 비교해 맛과 품질 모두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네슬레의 설명이다. 스위스 네슬레 본사가 2018년 미국 스타벅스에 71억5000만달러(약 9조5000억원)를 주고 커피와 차 등을 식료품점과 소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네슬레는 스타벅스 본사에서 공급받은 원두와 재료를 활용해 스타벅스 브랜드로 음료를 판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스타벅스는 제품군별로 상표권을 나눠 팔아 로열티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스타벅스 상표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기업이 여럿이다. 이마트와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 음료 제조 판매 및 매장 운영권을 갖고 있다. 동서식품과 서울우유는 스타벅스 병음료의 제조와 판매를 맡고 있다.
스타벅스 원두와 캡슐커피는 2018년 미국 스타벅스로부터 소매점 판매 권리를 사들인 네슬레가 유통하고 있다. 네슬레는 자사 커피머신 네스프레소와 네스카페 돌체구스토에 들어가는 스타벅스 커피 캡슐뿐만 아니라 스타벅스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과 식품, 음료를 세계 80여 개국에서 팔고 있다.
식음료업계는 네슬레가 국내에서 가격을 낮춘 스타벅스 소형 매장 설립에 성공한다면 프랜차이즈 커피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벅스가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중저가 시장에도 진출한다면 기존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브랜드와 가격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 스타벅스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스타벅스 브랜드 사용권을 두고 네슬레와 스타벅스커피코리아(현 SCK컴퍼니) 최대주주인 신세계그룹 간에 법정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직영 소형 매장이 우후죽순처럼 늘면 25년간 국내에서 스타벅스를 운영해온 신세계그룹의 커피사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신세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는 1997년 스타벅스 본사와 50 대 50의 지분율로 합작법인 스타벅스커피코리아를 세우고 한국에 스타벅스 브랜드를 들여왔다. 1999년 이화여대 앞 1호점을 시작으로 약 24년간 대기업의 유통 역량을 활용해 전국 매장 수 1800여 개, 연매출 약 2조6000억원으로 키웠다. 2021년 신세계그룹은 합작법인으로 운영되던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스타벅스 본사 지분 50% 중 17.5%를 4700억원에 추가 인수했다.
법조계는 법적인 분쟁이 발생하면 신세계그룹이 ‘독점 사업권’을 보장받았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국내 매장에서 판매하는 음료 및 상품권의 배타적인 운영 권한을 얻지 못했다면 스타벅스 본사와 또 다른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경쟁사의 진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재원 법무법인 시우 대표변호사는 “스타벅스 간판을 단 매장을 내지 않고 병행수입 업체처럼 본사의 제품 공급과 판매 권한을 가진 업체가 커피를 제조해 판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며 “중저가 스타벅스 매장이 현실화한다면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 간 상표권 소송으로도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하수정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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