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600이 인기를 누린 또 다른 배경은 정부의 용달 사업 허가다. 1970년 교통부는 우마차, 손수레, 자전거 등이 도맡아온 소화물 운송에 작은 용달차를 쓰도록 허용했다. 물론 용달 회사가 커지는 것을 우려해 운행 대수는 30대로 한정했고 요금은 4㎞까지 200원, 2㎞를 초과할 때마다 100원을 더 받도록 했다. 전세로 사용할 때는 1시간에 650원이었고, 30분이 추가되면 300원을 더 붙였다. 이외 대기료는 10분마다 70원으로 정했다. 덕분에 물건을 배달하는 직업으로 ‘용달사’가 생겨났고 1970년 4월 T600 30대를 도입한 최초의 용달 기업 서울용달사가 설립되기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택배 사업의 시작인 셈이다.
한참 개발이 이뤄지는 시대이던 만큼 T600에 실리는 물건은 계절마다 달랐다. 봄에는 타일, 페인트, 변기류 등의 건축재료가 많았고 여름에는 과일, 아이스크림이 단골 물건이었다. 사계절 인기 운송 품목은 책과 인쇄물, 의약품 등이었고 신학기 직전에는 대학 주변 하숙생의 이삿짐이 주를 이뤘다. 겨울이 오기 전 T600 화물칸에는 연탄이 잔뜩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늘 고난이 따라오는 것처럼 정부는 1972년 소형 화물차의 위험성을 이유로 들며 용달차의 고속도로 운행을 금지했다.
기아는 T600의 적재량이 최대 500㎏에 달하고 도심에 농산물과 생필품 공급을 전담한다는 점에서 고속도로 운행 금지는 가혹한 처사라며 맞섰다. 또한 고속도로는 여객보다 화물 운송을 지원해야 한다며 물동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형 용달차의 역할을 감안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기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T600 인기 역시 서서히 식어갔다. 결국 T600은 1974년까지 7724대 생산을 끝으로 단종됐다.
이후 53년이 흐른 지난해 T600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1972년 기아산업이 생산한 T600이 2019년까지 한 제과업체 대리점 운영에 활용됐는데 문화재청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며 산업 유물로 인정했다. 여전히 근거리 주행이 가능하고 원형 상태가 잘 보존된 데다 지금도 유효한 자동차를 등록하는 것이 자동차 산업사의 흔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아가 이런 점에 고무된 것인지 최근 T600을 복원하며 헤리티지 알리기에 나섰다. 회사는 승용 세단 ‘브리사’도 내세운다. 그런데도 1970년대 서민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왔던 삼륜차, T600을 기억하는 이가 더 많은 것 같다. T600이 등장한 지 50년이 넘었어도 말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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