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측근인 그는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하려면 선진 기술에서 뒤져선 안 된다”며 네루에게 우주 개발에 나서자고 한다. 신생 독립국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기도 힘든 형국에서 우주 개발을 하자는 것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자연과학 학부 과정을 우등 졸업한 네루 역시 인도를 빈곤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길은 과학·기술뿐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둘은 의기투합해 인도우주위원회를 설립한다. 인도 1인당 국민소득이 81달러이던 1962년 일이다.
어촌 마을의 작은 성당이 첫 우주기지였다. 기도실을 연구실로, 사제의 방을 설계 제도실로 썼다. 자전거로 부품을 실어 로켓을 조립하고, 소달구지에 통신위성을 싣고 테스트했다. 1969년, 지금은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 지역에 총리 직속의 인도우주연구기구(IRSO)를 설치했다. 1972년엔 세계 최초로 정부 부서의 하나로 우주청(DOS)을 발족했다. 아직도 항공우주청을 설립하지 못한 우리보다 50년이나 앞섰다.
인도 우주 개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압둘 칼람 전 대통령이다. 그는 인도 최초의 자체 위성 발사와 통합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핵 개발 등을 주도했다. 이런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TV도 없는 단칸방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첫 위성 발사를 축하한 자리에도 변변한 신발이 없어 슬리퍼 차림으로 갔다.
국민적 존경을 받아 인도 사회의 비주류인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90% 이상의 지지로 상징적 국가수반인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퇴임 후에는 청년들에게 과학기술 자립이라는 ‘불의 날개’를 달아주자며 강연을 다니다가 83세(2015년)의 나이에 연단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인도가 미국, 중국, 러시아와 어깨를 견주는 우주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이처럼 국가 지도자들의 확고한 과학 강국 비전과 과학자들의 열정 및 헌신,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우러진 결과다. 과학자를 존경해 대통령으로까지 올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는 화폐 도안에까지 우주선을 넣은 나라다. 최고액권인 2000루피 뒷면에는 화성 탐사선 망갈리안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인도처럼 정치가 과학을 뒷받침해주지는 못할망정 정치가 과학의 발목마저 잡고 있는 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후보 시절 공통 공약이었던 우주항공청 연내 설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우주항공청 특별법은 입법 예고된 지 6개월 가까이 지났으나, 진척 상황이라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게 전부다. 거대 야당의 횡포로 우주항공청 설립도 정쟁거리가 된 탓이다.
미래 첨단기술 경쟁은 우주 개발 여하에 따라 승부가 날 전망이다.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차의 안전 운행에 필수적인 6세대(6G) 통신 서비스에도 우주 개발이 핵심이다. 달에는 지구에는 없는 헬륨3라는 유용한 물질이 엄청나게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융합 발전에 활용하면 방사성 폐기물 없이 원전의 5배 이상 효율로 발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빨리 우주로, 달로 달려가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그 모든 외침은 여의도로만 가면 정치에 파묻혀 메아리가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인도 로켓은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하다. 저렴한 비용에 세계 각국의 주문이 몰려 지금까지 34개국 424개의 위성 발사를 대행해주고, 수조원의 돈도 벌었다. 싼 인건비에 재활용·부품 자급화 덕인데,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기술 자립의 절박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학기술의 후진성은 예속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자유가 타협의 대상이 되도록 허용해선 되겠는가?” (칼람 전 대통령의 자서전)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보면서 미국의 다섯 살 난 한 소년이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52년이 지난 2021년, 그는 우주 상공 107㎞까지 올라가 그 꿈을 이룬다. 우주 여행사 블루오리진을 운영하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얘기다. 우주 개발은 미래 세대에 꿈을 심어주는 일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미래를 말살하는 자해 행위를 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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