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도 건전재정 기조를 뚜렷이 한 게 특징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첫해 짠 올해 예산에서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에 마침표를 찍고 건전재정으로 돌아섰다. 이어 내년 예산안에선 올해(5.1%)보다 지출 증가율을 더 낮추며 재정개혁의 고삐를 조였다. 특히 경기 하강과 자산시장 약세로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예산안 대비 33조원가량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자 재정적자를 늘리는 대신 지출 증가폭을 최대한 줄이는 쪽을 택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내년 예산 증가율을 0%로 동결하는 것까지 검토했다”고 했다.
기재부는 올해 예산(24조원 구조조정)에 이어 내년 예산에서도 23조원가량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 재량 예산 120조원의 20%가량을 구조조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기재부는 각 부처가 지난 5월 말 제출한 예산요구안을 다시 돌려보내며 1만 개 이상 사업을 원점 재검토했다.
정부는 R&D 예산이 파급력 있는 도전적 과제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작은 ‘안전한 연구’에 낭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마저도 대학·연구소 간, 연구자 간 나눠 먹기가 횡행하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다만 일방적 삭감이 아니라 그동안 과도하게 늘어난 R&D 예산을 정상화하는 것이란 게 정부 입장이다. 추 부총리는 “내년 R&D 예산이 올해보다 줄긴 했지만 2017년 19조5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3% 늘어난 수준”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첨단바이오, 양자 등 차세대 혁신 기술 투자도 올해 4조7000억원에서 내년 5조원으로 오히려 강화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기재부는 밝혔다.
보조금 사업도 대대적으로 삭감됐다. 보조금 사업은 2018년 66조9000억원에서 올해 102조3000억원으로 35조원 넘게 급증했는데 내년 예산은 4조원 가까이 줄었다. 관행적인 지원 증가로 보조 사업이 늘면서 집행·관리상 문제 등 누수 요인이 다수 지적됐다고 기재부는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모든 재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정치 보조금 예산, 이권 카르텔 예산을 과감히 삭감했다”고 했다.
교육 예산이 6.9% 삭감된 점도 눈길을 끈다. 교육 예산은 올해 96조3000억원에 달했지만 내년 예산은 89조7000억원으로 6조6000억원 줄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국세 수입에 연동해 지방에 넘겨주는 재원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부문별로는 유아·초중등 교육 예산(올해 80조7000억원→내년 73조7000억원)이 줄고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예산(9조4000억원→14조8000억원)이 크게 늘었다. 학령인구 감소를 반영해 유아·초등교육 예산 일부를 고등·평생교육으로 돌리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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