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무기한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대통령의 국정 기조 전환 및 인적 쇄신, 일본에 대한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등의 요구를 내걸면서다. 갑작스러운 행보에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사법 리스크로 흔들리는 리더십을 고려한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李, 정치 인생 두 번째 단식
이날 이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과 국민의 삶이 무너진 데는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간담회 이후 국회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이 대표가 단식 투쟁에 나선 것은 성남시장이던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에 반대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한 이후 두 번째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때까지 단식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이 대표가 갑작스러운 단식에 들어가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황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민주당 한 최고위원은 “지난 30일 저녁에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갑자기 단식을 통보했다”며 “거의 모든 최고위원이 만류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사법 리스크·퇴진론 의식했나
이 대표의 단식 돌입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야당 대표의 단식 투쟁을 통해 선명한 정부 견제 메시지를 내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자신의 검찰 수사 소식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돌리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사법 리스크라고 얘기하지만 ‘검찰 스토킹’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며 “2년간 400번이 넘는 압수수색을 통해 먼지 털듯 괴롭히고 있지만 (불법을 저질렀다는) 단 하나의 증거도 없지 않냐”고 지적했다.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재명 퇴진론’과 침체된 지지율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부진한 당 지지율과 관련한 질문에 이 대표는 “대선에서 진 야당이 집권 세력보다 지지율이 높았던 사례가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당내 퇴진론에 대해선 “지금도 지지자와 당원들은 압도적으로 현 체제를 지지한다”며 일축했다. 한 비명계 의원은 “단식을 통해 ‘핍박받는 투사’의 이미지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분·출구전략 없어”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명분 없는 단식’에 나섰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국민의 삶을 돌봐야 하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웬 뜬금포 단식인지 모르겠다”고 쏘아붙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맥락 없는 단식에도 수사는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야당 대표의 단식 투쟁은 통상 여대야소 상황에서 나타난다. 2009년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단식과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이 대표적인 예다. 2016년에는 여당이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했다. 모두 소수당 대표가 원내 사안을 두고 진행한 투쟁이다. 이 대표의 단식은 사실상 입법권을 장악한 국회 다수당 대표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요구사항들은 원내 협상 대상이 아니라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속한다. 윤 대통령이 수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