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래전에 폐지된 의무경찰(의경) 부활 방침을 꺼내들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묻지 마 강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낮 도심 등에서 무차별하게 휘두르는 흉기, 다중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범죄는 예방이 쉽지 않은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다. 경계·순찰 등의 업무를 위해 경찰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의경을 뽑으면 군 입대 인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일각에서는 여성에게도 군 입대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아예 모병제·용병제로 직업군인제를 전면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만큼 청년 인적자원이 부족하다. ‘치안 보강’과 ‘국방 만전’이 부딪치는 모양새가 됐다. 흉악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차원에서의 의경 부활에 문제점은 없나.
기존 경찰 인력과 조직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과학수사도 강화해야 한다. 치안상 필요한 곳에 CCTV를 더 설치하고 경찰관서와 연결되는 비상벨이나 보안 전등을 확충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반시설을 갖춰나가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하루아침에 사각지대 없이 갖춰나가기도 어렵다. 순찰 및 즉시 대응 경찰을 더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기존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경을 직접 강력 범죄 현장에 보내거나 대응 전담반에 바로 투입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의경이 예방 차원의 순찰 업무를 보조하고, 교통과 일반 보안 업무를 맡아주면 이쪽에 배치된 정규(직업) 경찰관을 묻지 마 흉악 범죄 대응 업무로 돌려 활용할 수 있다. 경찰서와 지구대 등 일선 경찰관서에서 행정 보조만 하더라도 1인 역할은 해내는 것이다. 간부는 많고 현장 치안 인력은 부족한 경찰에 24시간 상주 의경은 크게 도움이 된다.
1982년 12월 처음 도입한 의경제도는 이미 시행해본 경험도 있다. 경찰청은 신속 대응팀에 3,500명, 주로 대도시 거점에 4,000명의 인력만 배치해도 치안 강화에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보고 인력 활용 계획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안전한 치안, 양질의 경찰 서비스도 국방만큼이나 중요한 국가적 가치다. 의경도 현역 군인만큼 국가에 기여하고 그에 따른 긍지도 느낄 것이다. 대도시 등의 근무 특성상 지원자도 충분할 것으로 여겨진다. 의경 근무자에게 경찰관 채용에 가산점을 준다면 좋은 경찰 요원을 미리 확보해두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청년을 경찰 보조자로 돌려쓰는 일에는 다른 차원의 문제점도 존재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의무경찰과 전투경찰 폐지 방침을 정하고 단계적으로 인원을 줄여온 데는 인권 문제도 있었다. 이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 만성화된 구타와 욕설 등으로 인권침해가 잦은 일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 권고안을 낸 것이다. 군 복무 대상자를 의경으로 소집해 치안에 활용하는 것은 병역의무라는 본연의 일 외의 다른 일을 시키는 것인 만큼 일종의 강제 노역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제한한 강제 노역에 포함된다는 얘기인데, 이런 국제적 논쟁거리에 우리가 괜히 휘말릴 필요가 없다.
치안 문제, 즉 경찰의 과제는 경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여러 문제점 때문에 폐지한 의경제도를 이제 와서 재도입하면 경찰 내부의 구조적 문제점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도시 근무와 외출 허용 등을 내세운 채 저렴한 인건비로 군 입대자를 모집해 치안에 쓰려는 행위는 기존 경찰의 편의주의다. 경찰에 간부는 많고 현장 투입 인력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 이전에 의무경찰이나 전투경찰 요원이 일선 경찰관들의 억압적 지휘에 휘둘리던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강제적 복무 기간’이라는 점 때문에 의경은 사표 제출도 불가능하다. 수사력 보강이나 과학적 예방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경찰 스스로 예산과 인력 문제를 풀어야 한다. 치안에 국방이 희생돼선 안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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