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슈프림이 지난달 19일 서울 도산대로에 연 국내 첫 플래그십스토어에 20·30대 ‘패피’(패션피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계의 샤넬’로도 불리는 슈프림 제품은 그간 해외 직구(직접 구매)나 리셀(재판매) 플랫폼에서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희귀템’(희귀 아이템)이었다.
슈프림은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신규 매장 확장에 신중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슈프림이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 이어 한국을 일곱 번째 직접 진출 시장으로 택하자 패션업계에선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약 18조7000억원)로 전년보다 4.6% 성장했다. 1인당 연간 명품 소비액(325달러, 모건스탠리 추정)은 미국 중국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2020년 몽클레르에 이어 지난해 메종마르지엘라 질샌더 디젤 등을 보유한 OTB그룹과 끌로에, 셀린느, 톰브라운 등이 직진출에 나섰다.
한국 직진출의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개선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패션업체와 독점 계약해 제품을 판매한 대금은 국내 업체 매출과 이익으로 잡히지만 현지 법인을 세우고 매장 운영 등 단순 리테일(소매) 매니지먼트만 맡기면 본사 매출에 합산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랄프로렌, 푸마 등이 국내 판권 계약을 깨고 직진출로 선회한 것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스타나 SNS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다. 요즘 하이엔드 패션 하우스들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와 축구 선수 손흥민을 비롯해 한국 스타들을 글로벌 앰배서더(홍보대사)로 활용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류 스타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기용하는 것은 K컬처가 그만큼 트렌디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업체는 2020년부터 매년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적지 않은 이익과 배당을 챙겼지만 고용 창출, 법인세 납부 등을 통한 기여도 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1년 국내 법인을 세운 샤넬은 작년 말 기준으로 1574명을 고용하고 있다.
연매출이 1조6000억원대로 비슷한 한 식품업체 임직원이 1100명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인원이다. 지난해 1조6900억원가량의 매출을 낸 루이비통코리아도 임직원 1092명을 두고 있다.
이들 업체가 내는 법인세 역시 상당하다. 샤넬코리아와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각각 1058억원, 382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 최고 패션 하우스들이 국내로 몰려들면 ‘한국은 세계적 브랜드들이 사랑하는 나라’란 인식이 확산하고, 그 영향으로 K컬처 이미지가 더 좋아지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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