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양 못지않게 질을 중시하게 됐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최저가순으로 찾아보곤 했다. 해외로 여행을 갈 때면 오래 걸리더라도 한 번 환승은 기본이고, 캐리어에는 컵라면과 햇반이 가득했다. 침대가 작고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방에서 묵기도 했다.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 몸이 찌뿌듯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상을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지금의 나는 최저가순뿐 아니라 추천순을 보게 됐다.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효율적으로 여행할 의사가 있다. 비행기 환승 시간을 아껴 휴가를 하루 덜 쓰고 싶다. 숙소나 렌터카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잡게 됐다. 컨디션을 잘 관리하기 위함이다. 몸 상태에 따라 같은 광경도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여행 한 번의 길이보다 빈도를 우선시하게 됐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던가? 물론 강도도 중요하다. “내가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주는 건 강도다. 하지만 빈도가 없다면 “아주 잠깐의 행복을 위해 이토록 고생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직장인으로 예를 들자면 올해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내년 여름휴가까지 어떻게 버티지?”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기에 강도가 큰 한 번의 행복과 매일의 잔잔한 행복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후자를 고르겠다.
요컨대 일상의 질을 따지게 됐다. 갑갑한 도시에서의 매일이지만, 그 속에서 여행하는 법을 익히고 있달까?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겠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밥 먹고 나서 10분이라도 산책하며 계절의 미묘한 변화를 느껴본다. 요새는 아침에 해 뜨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고, 공기는 여전히 습하지만 바닷바람처럼 시원한 느낌이 든다. 점심시간에는 새로운 카페에 가보기도 하고, 신메뉴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먹던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는 우유 맛이 진한 카페라테를 좋아한다.
퇴근 뒤 집에서 저녁을 먹고 혼자 동네 카페를 찾는다. 시원한 페퍼민트 티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넘기는 순간은 참 평화롭고 온전하다. 카페 마감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이지만, 음료값이 아깝지 않다. 집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향의 보디워시와 샴푸로 하루를 씻어낸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조금 더 투자하더라도 내 취향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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