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런 식이다. 교육 개혁은 입시라는 뻘밭에 빠져 물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속눈썹 밑 다래끼 째기에 바쁘다. 많은 전문가가 방책을 제시하지만 교육이 본질적으로 보상 시스템이라는 점은 간과한다. 게다가 한국 교육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옛날에도 시험은 치열했다. 조선시대 과거(科擧)에는 수십만 명까지 응시했다. 1800년(정조 24년) 순조의 세자 책봉을 기념하는 특별 과거엔 21만5417명이 시험을 치렀다. 최종 합격자는 12명.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응시 인원 44만7669명 중 SKY 의대 선발 인원 351명과 비교해 치열하기가 바늘구멍이다.
이렇게 출세하기 위해 20년, 30년 공부한 서생이나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불사하는 수능 응시자가 원하는 결과는 하나다. 확실하고 안락한 미래, 투자한 것에 비례하는 보상이다.
한국에선 수능 시험 한 번으로 경제적, 사회적 효용이 평생 따라온다. 그래서 유치·초등 의대반이 생기고 학부모가 몰린다. 한국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뀐 지 오래다. 재력과 명망 있는 변호사가 50억원과 포르쉐 자동차의 유혹에 빠질 정도다. 사농공상의 유교 직업의식마저 DNA에 깊이 새겨져 있다. 월 1000만원 번다는 타일공을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20대 여성 도배사와 트럭운전사가 SNS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희귀해서다.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중소기업 월급도 교육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작년 중기 초임 연봉은 2881만원이었다. 평균임금은 대기업이 1억1489만원, 중기는 5919만원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그러니 공부에 재능이 없어도 대학에 목맬 수밖에.
우리가 의사에게 높은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그가 생산한 부가가치 때문이다. 생명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 그 생명을 의사가 살린다. 그런데 의사만 생명을 살리나. 소방관, 군인, 경찰도 생명 손실을 예방한다. 보상은 확실히 의사보다 못하다. 일에 대한 가치 인식의 편향이 보상 격차를 낳았다.
SKY대 졸업이, 의사 자격이 커다란 보상을 보장하는 구조에서 교육 정상화는 쉽지 않다. 점수 줄 세우기를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고졸 4년 경력자와 대졸자가 받는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면 굳이 그 줄에 설까. 사교육에 한 해 26조원을 쏟아부을까.
학력이 아니라 일의 가치에 보상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저가 보상의 상단을 높이고, 과도한 보상을 낮추는 게 해법이다.
저보상의 중기 임금을 높이는 게 우선 과제다. 뿌리산업의 도금 작업 등 공정 스마트화로 부가가치를 제고해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푸는 대안이기도 하다. 의사 등의 과도한 지대(地代) 추구는 공급 확대로 깨는 게 지름길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뒤에서 두 번째로 적다. 변호사처럼 확 늘려야 한다. 보상 구조를 혁신하지 않고 백날 대입 제도를 고쳐봐야 헛일이다. 사교육이 없어질 리 만무하고 교육 개혁을 외치는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교육 패러다임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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