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레티니는 예외다. 그는 글로벌 패션계에서 저명한 여성 인사다.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드문 업계에서 2013년부터 10년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생로랑을 이끌며 세계 2위 럭셔리 그룹 케링의 주요 브랜드로 키워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를 지난해 ‘2022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으로 선정했다.
지난 7월 케링은 벨레티니를 그룹 부대표로 임명하고 브랜드 개발 총괄을 맡겼다. 그룹 내 핵심 인물이 됐지만 그의 앞길이 순탄치는 않다. 글로벌 1위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의 선전 사이에서 그룹을 성장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게 됐다.
벨레티니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패션이 좋았고, 그때 29세였기 때문에 이직했다”고 말했다. 당시 은행권에서는 레스토랑(restaurant)과 부동산(real estate), 소매업(retail) 등 ‘3R’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패션은 소매업에 속했다. 그러나 벨레티니는 다른 사업에서 찾기 힘든 패션의 창의성과 감성에 매력을 느꼈다. 젊은 나이는 도전을 가능케 했다.
그렇게 패션업계로 들어온 그는 2003년 케링그룹에 스카우트돼 구찌와 보테가베네타 등을 거쳤다. 보테가베네타에서는 훗날 구찌의 부흥기를 가져온 마르코 비자리(옛 구찌 CEO) 밑에서 일하며 빠르고 자율적인 결정을 추구하는 케링의 조직 문화를 배웠다. 경영·전략 전문가로 인정받은 그는 2013년 9월 생로랑 CEO로 발탁됐다.
생로랑의 검은 정장을 즐겨 착용하는 벨레티니가 주목한 것은 생로랑의 ‘숫자’다. 그가 CEO가 되기 전인 2012년 생로랑 매출은 4억7280만유로(약 6754억원)로, 주요 브랜드 중 규모가 가장 작았다. 그룹 전체에서 비중은 4.8%에 그쳤다. 그러나 벨레티니가 진두지휘한 10년간 생로랑은 급성장했다. 팬데믹 전인 2019년 매출이 20억유로를 넘었고, 지난해 연간 매출은 33억유로(약 4조7151억원)로 2012년의 7배 수준이다. 브랜드 규모도 구찌를 이어 그룹 내 2위다.
벨레티니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수익성이다. 2012년 13.7%였던 생로랑 영업이익률은 올 상반기 30.5%까지 높아졌다. 상반기 생로랑의 영업이익은 4억8100만유로로, 그룹 내에서 전년 동기 대비 가장 높은 성장률(10%)을 기록했다. 구찌는 이 기간 4% 하락했고, 보테가베네타는 1% 늘었다.
손익에 따라 빠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금융권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벨레티니는 “내 속은 여전히 금융가”라고 스스로 말한다. 가장 높은 수익은 가장 높은 위험에 대한 대가이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다.
이브 생 로랑의 슬림하고 날카로운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생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를 영입한 주역도 벨레티니다. 패션 기업에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와 사업 확장을 꿈꾸는 CEO는 전통적인 갈등 관계지만 둘은 호흡이 잘 맞았다. 검은 옷을 사랑했고 이탈리아어를 썼으며, 무엇보다 생로랑을 샤넬과 디올 같은 대형 브랜드로 키워내겠다는 공통된 포부를 갖고 있었다.
벨레티니는 이번 인사에서 케링그룹 부대표직을 겸임하게 됐다. 브랜드 개발을 총괄하는 자리다. 케링은 성명에서 “모든 브랜드 CEO가 벨레티니에게 보고할 것이며, 그는 브랜드들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쉬운 일은 아니다. 팬데믹 기간 급격히 몸집을 불린 명품산업은 지속되는 고금리 환경과 미국 경기 침체 우려, 둔화된 중국 경제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75개 브랜드를 보유한 LVMH와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한 에르메스가 명품 시장의 주축이 된 상황에서 생로랑을 비롯해 구찌와 보테가베네타 등 케링그룹 브랜드들의 도약은 도전적인 과제다. 최근 케링이 지분 30%를 인수하며 포트폴리오에 편입한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를 성장시키는 것도 그녀의 임무가 될 전망이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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