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프로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 골프도 승자만을 위한 잔치다.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장만큼도 안 나지만,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막론하고, 프로로 뛰는 동안 한 번 이상 우승컵을 들어 올린 ‘챔피언’은 20%밖에 안 된다. 나머지 80%는 조연으로 뛰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지난주까지 서연정(28)도 그런 ‘사라질 이름’ 중 하나였다. 동갑내기 고진영 함께 2014년 K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10년이 다 되도록 우승 한 번 못 해서다. 최고 성적은 준우승. 그것도 다섯 번이나 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충분하지만, 운이 없거나 기(氣)가 약한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2011년 한화클래식 2라운드에서 2억원 넘는 벤틀리 차량이 걸린 홀에서 홀인원을 했지만, 아마추어 신분이라 차 열쇠를 가져가지 못한 사연도 서연정에게 ‘운이 없다’는 이미지를 입히는 데 일조했다.
이로써 서연정은 KLPGA투어에서 가장 많은 대회를 치르고 첫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종전 기록은 2019년 11월 ADT 캡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안송이(33)의 237개 대회였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서연정은 3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았다. 그러나 6번홀(파4)에서 티샷 실수로 공이 해저드에 빠졌고, 벌타 후 친 세 번째 샷마저 그린에 다다르지 못해 더블보기로 흔들렸다. 그사이 노승희가 7번홀(파4) 버디로 따라오면서 ‘첫 승 대결’이 벌어졌다. 노승희 역시 1부 투어 97개 대회 만에 첫 승에 도전하는 상황이었다.
10번홀(파4)에서 서연정이 버디를 잡자 노승희도 버디로 응수했다. 서연정이 13번홀(파4)과 14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낚자, 노승희도 14, 15번홀(파4) 연속 버디로 맞섰다.
서연정은 “그동안 포기할까 많이 고민했지만, 꾹 참고 했더니 우승했다”며 “우승이 없어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면 우승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노승희는 이날 정규 홀 마지막 18번홀에서 약 5m 버디 퍼트를 넣었다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으나, 이를 넣지 못해 첫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신인 황유민(20)은 12언더파 204타 단독 3위에 올랐다. 박민지(25)는 11언더파 205타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박민지는 이 대회에 걸린 대상포인트 37점을 보태 이예원(396점)을 제치고 대상 포인트 1위(415점)로 올라섰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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