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대 267%'
올해 전세계 시장공개(IPO) 시장의 대어로 꼽히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7년 전 인수 가격 대비 현재 평가액과,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의 상승률이다. ARM 인수 당시 "내 운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대감을 드러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지만, 그의 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출 증가율, 엔비디아 326% ARM 65%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연결된 냉장고, 초인종 등 가전이 일상화되는 미래를 그렸던 손 회장의 사물인터넷(IoT) 베팅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ARM은 이르면 이달 뉴욕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IPO를 위한 증권신고서(S-1)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WSJ에 따르면 IPO 시장 관계자들은 ARM의 목표 기업 가치를 500억~550억달러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소프트뱅크가 자체 벤처캐피털 펀드인 비전펀드의 ARM 지분을 25% 매입하면서 평가한 가치는 640억달러다. 소프트뱅크의 2016년 인수 가격인 320억달러의 2배다. 당시 손 회장이 "5년 안에 (ARM의 기업 가치가) 5배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ARM의 연 매출은 소프트뱅크 인수 후 약 65% 증가했다. 전체 반도체 부문보다는 높지만 업계 선두주자인 엔비디아(326%) 등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다. 수익률은 인수 전 34%에서 20%(2023 회계연도 기준)로 감소했다. 이는 인수 뒤 소프트뱅크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린 결과로 상장 뒤 비용을 줄이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IoT 아닌 AI가 대세…중국 법인은 사실상 독립
ARM의 성장세가 손 회장의 기대에 못 미친 배경으로는 세 가지가 거론된다. 먼저 ARM의 주력 사업 분야였던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크게 확대되지 못한 점이다. 손 회장은 인수 당시 "소와 닭, 양까지 연결될 것"이라며 2035년까지 1조개가 넘는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시장은 1조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ARM이 최근 자료를 통해 내놓은 IoT 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치는 2025년까지 505억달러, 2026년 반도체 개수 490억개에 그쳤다.최근에는 ARM도 IoT보다 인공지능(AI) 수혜 기업 이미지를 더 내세우고 있다. ARM은 IoT, 소비자(스마트폰), 자동차, 클라우드 서버 4개 부문을 운영하고 있는데 AI 열풍으로 인해 자동차, 서버 부문 매출이 대폭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ARM은 최근 투자설명서에도 AI 전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RM이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 등에서 이미 지배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도 성장이 부진했던 이유로 거론된다.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에서 수년간 9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지정학 리스크도 작용했다. ARM은 앞서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통해 "매출 중 4분의 1을 중국에서 벌어들였다"라며 "중국과 미국·영국 간 긴장 등 정치·경제적 위험에 특히 취약하다"고 스스로 밝혔디.
그럼에도 ARM은 중국 사업 운영권을 쥐고 있는 ARM차이나와 사실상 분리된 상태다. ARM은 2020년 6월 ARM차이나 CEO였던 앨런 우를 해고한다고 밝혔지만, ARM차이나 측은 "중국의 법률을 따르고 중국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며 사실상 본사의 결정에 불복했다. ARM은 투자설명서에서 "ARM차이나가 ARM과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적시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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