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근로시간제는 기준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정하고 근로자와 합의가 있는 경우 1주에 12시간을 한도로 연장근로가 허용된다. 그리고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그러나 산업구조와 업무 방식의 변화에 따라 근로시간에 대한 획일적인 규율보다는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근로시간제도를 운영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이후 다수의 기업들이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유연하게 운영하기 위해 업무방식을 개선하고 근무시간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유연근로시간제도를 많이 도입하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도 궁극적으로는 유연근로시간제도의 완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유연근로시간제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제도가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을 평균하여 1주간 근로시간이 기준근로시간인 40시간 이내이면 특정 일 또는 특정 주의 근로시간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근로시간을 일정 범위에서 초과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이다. 일정 기간을 평균하여 1주 40시간의 범위에서는 연장근로시간은 인정되지 않고, 1주 평균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허용되므로 결국 1주 평균 최대 52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이다.
이와 같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을 평균하여 1주의 평균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점에 특색이 있다. 그러므로 평균 근로시간을 측정하는 단위기간 또는 정산기간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만일 그 기간을 1년으로 정한다면 1주 평균 40시간을 유지하면 연장근로가 없다는 결과가 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은 2주 이내, 3개월 이내, 6개월 이내로 법정되어 있고,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은 1개월이지만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에는 3개월 이내로 법정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3개월 이내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에는 근로일과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미리 근로자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하고, 6개월 이내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주별 근로시간을 서면으로 합의해야 하는 점이 제도의 운영에 큰 제약이 된다. 업무량의 변동에 따라 서면합의를 변경할 수는 있겠지만 실무적으로 용이한 일은 아니다.
또한 근로자가 업무의 시작 및 종료 시각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에서는 근로자가 근로시간의 양과 분배 결정을 주도하므로, 사용자로서는 그 근로시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이 성공적인 운영의 선결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정산기간이 1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의 근로자가 회사가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 달에 260시간을 근무하였다면, 평균 1주 40시간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여 회사의 대표이사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시간제는 근로시간 자체를 의제하는 제도이다. 즉 이 제도들은 일반적인 기준근로시간제와 동일하게 1일, 1주 단위로 기준근로시간을 적용하지만 근로자별로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지 않고 그 유형에 따라 노사합의서 또는 취업규칙에서 정한 일정한 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의제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에서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다.
다만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는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고 사용자의 근로시간 관리로부터 벗어나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적용되는 제도인데, 최근에는 통신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외부에서 근무하더라도 근로시간 관리가 가능해지고 있어 점차 그 적용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재량근로시간제는 노사가 합의한 시간으로 근로시간이 확정되지만 법령에서 특정하고 있는 업무에 국한하여 적용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 적용 범위에서는 실제 근로한 시간을 일일이 측정할 필요도 없고 실제 근로한 시간이 다르다는 주장도 할 수 없으므로 사업주에게는 편리한 제도이다.
한편 유연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1일 8시간 및 1주 40시간의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소정근로시간을 정하거나 실제 근로시간에 상관없이 근로시간을 의제하는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정한 요건과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법률에서 정한 방식에 의해서만 도입할 수 있다. 그리고 분쟁이 발생할 경우 사법부가 그 적용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사용자로서는 제도를 도입함에 있어서는 법적 요건을 충족하도록 제도의 준비 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대처해야 한다. 최근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51조 제1항에서 정한 2주 이내의 기간을 단위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된 바에 따라 취업규칙에 의하여만 도입이 가능하고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를 통하여 도입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유연근로시간제의 시행에 있어 또다른 어려운 문제는 유형에 따라서는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근로자대표는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 과반수의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이다. 그런데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의 근로자대표의 선정 절차와 방법이 법에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근로자 대표의 임기, 권한의 범위, 서면합의 해지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쟁점이 미제로 남아 있고 이에 관한 입법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근로자대표와 관련하여 종종 실무적으로 혼선을 일으키는 것이 노사협의회 의결을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근로자대표에게 부여되는 권한의 내용을 주지한 상태에서 근로자 과반수가 자유로운 의사를 모으는 방법으로 근로자대표가 선출되어야 하고 노사협의회는 근로자대표와 별개의 법적 절차로 구성되는 조직이므로 노사협의회 의결만으로 유연근로시간제의 도입은 어렵다고 본다.
기영석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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