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의 범위가 더 넓지만 그렇다고 경상수지가 무역수지를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다. 두 가지는 별도 개념이다. 집계 기관도 경상수지는 한국은행, 무역수지는 산업통상자원부로 다르다. 다만 경상수지 세부 항목 중 무역수지와 비슷한 개념이 있다. 상품수지라는 항목이다. 상품수지도 무역수지와 마찬가지로 상품 수출입을 나타낸다. 하지만 집계 방식과 대상에 차이가 있다.
국내 조선사가 해외 선사에서 주문받아 배를 만드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국내 조선사가 선금, 중도금, 잔금을 나눠 받으면 상품수지에는 그때그때 받은 금액이 수출로 반영된다. 그러나 무역수지엔 배를 완성해 해외 선사에 넘길 때 수출로 집계된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인 수출도 상품수지와 무역수지 간 차이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에 판매한 스마트폰은 무역수지엔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상품수지엔 ‘중계무역 수출’ 항목으로 들어간다. 기업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무역수지에 반영되지 않는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무역수지는 적자인데 상품수지는 흑자고, 이에 따라 경상수지도 흑자를 내는 일이 생긴다.
GDP 계산식에서 수입액을 빼는 것은 그 금액이 소비, 투자, 정부지출 중 한 가지에 포함돼 있어 중복 계산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경상수지 적자 자체는 GDP 증감과 관련이 없다. 한국은 1960~1980년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서도 고도성장을 이뤘다.
불황형 흑자를 우려하는 것도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내수 소비와 투자가 부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최근 경상수지 변동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소득이 늘면 외국 상품 수요가 증가해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한다”며 “내수 경기 개선이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뒤집어 말하면 경상수지 흑자는 소비 투자 등 내수 경기 부진을 반영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은 39%였다. 대외 금융자산에서 대외 금융부채를 뺀 순대외자산은 GDP 대비 46%였다. 외환위기 때는 단기외채가 외환보유액의 세 배에 이르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400억달러의 순대외부채가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화하면 국내 기업의 생산이 위축되고 환율이 올라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또 순대외자산이 줄어 대외 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경상수지 흑자 또는 적자 자체보다는 해외에서 유입된 자본과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원자재, 설비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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