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간 기업공개(IPO) 시 발생하는 세금 관련 자산으로 수조원을 벌어온 사모펀드(PEF)들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델라웨어주 법원은 주주들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해달라는 미국 도메인 등록기업인 고대디(GoDaddy)의 요청을 기각했다.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고대디가 2020년 기업공개 당시 세금환수계약(TRA·Tax Recievable Agreement)으로 창출되는 세금 자산을 이용해 투자자인 사모펀드 KKR 등에 8억5000만달러(약 1조1100억원)를 지급했지만, 실제로는 1억7530만달러(약 2300억원) 규모의 부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세금 자산으로 투자자에게 계약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하다는 게 원고 측 주장이다.
TRA는 비상장 기업이 기업공개를 할 때 만들어지는 세금 관련 자산을 투자자와 회사가 나눠 갖는 계약을 말한다. 미국에서 비상장 기업은 법인세가 아닌 개인소득세를 낸다. 상장 시에는 법인세 납부를 위한 자산 가치 재평가가 이뤄진다. 이 경우 감가상각 및 무형자산상각이 발생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투자자와 회사는 이 자산을 85대15 비율로 나눠 가질 수 있다. 기업공개 시 딱 한 번 자산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TRA는 '진주 찾기'라고도 불린다.
1990년대 초 도입된 TRA는 최근 사모펀드 업계에서 더욱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업공개 시 TRA를 시행하는 비율은 2005년 전까지 1% 이하에 불과했으나 2018년 이후 8%까지 상승했다. TRA가 확산되면서 TRA로 창출되는 미래 현금에 대한 권리를 구매하는 펀드도 생길 정도다.
문제는 고대디의 사례처럼 TRA 지불금보다 실제 창출되는 세금이 적거나 부채가 생기는 경우다. 이 경우 초기 투자자와 회사만 이익을 챙기고 나머지 주주들이 그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델라웨어 법원은 고대디의 신청을 기각한 사유에 대해 "회사 공시에서 1억7530만 달러로 평가된 부채에 대해 회사가 8억 5000만 달러를 지불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라며 "하지만 의결권을 가진 이사들은 코를 막고 거래를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앤 립튼 툴레인대학교 기업법 교수는 "거래가 너무 끔찍해서 법원이 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애써야하는 경우, 이를 낭비라고 한다"라며 "델라웨어주 법원이 그렇게 느낀 것 같다"고 평가했다. TRA 펀드를 운용하는 패럴렉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앤디 리 최고투자책임자 역시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자산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세금 자산이 생성되지 않았다면 가치가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고대디가 주주들과의 합의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모펀드들도 법원의 이번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 칼라일 등이 유사한 소송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아폴로는 2021년 '제프리 엡스타인 성추문 사건'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창업자인 레온 블랙, 조쉬 해리스와 현재 CEO인 마크 로원에게 각각 TRA로 2억7600만달러, 1억2300만달러, 1억1300만달러를 지급했다. 아폴로 측은 "블랙 등 회사 관계자들에 대한 지불은 외부 법률 및 재무 고문의 조언을 받아 사외이사 위원회에서 협상하고 승인됐다"고 밝혔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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