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대표이사는 어디에 있을까 [김태엽의 PEF썰전]

입력 2023-09-06 15:10  

이 기사는 09월 06일 15:1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통 어쩌구 저쩌구 그룹 회장님들이 필자를 덜 찾아서 좀 쓸쓸해 하고 있는데, 이 틈을 타서 필자의 심심한 자투리 시간을 매워주는 분들이 생겨났으니 이른바 중견그룹 혹은 기업의 젊은 오너분들이다. 나이도 이제 나랑 비슷한 20대,,,가 아니고 30대 중후반들이고, 유학파이거나 지방 유지 출신인데다가 직접 창업을 해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이런 ‘젊은 피’들과 어울리는게 너무 재미있는데, 물론 나를 완전 어르신 취급을 하는데는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다! (얼굴이 문제인가, 머리숱이 문제인가, 친구가 되고 시프다 여러분!)

여하튼, 이런 젊은 피들이 주로 물어보는 단골 질문들이 있는데, (심지어 어제는 필자가 몇시간 자는지, 어제 밤에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 까지 물어보셨다!!) 오늘 논할 것은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한 사람, 바로 대표이사이다. 이 질문은 여러가지 버전으로 DM이나 카톡이나 술자리 안주거리로 슬그머니 올라오는데, 뭐 대충의 포멧은 이러하다.

“어르신, 사모펀드들은 대표이사를 어떻게 뽑아요?”
“형님, 회사를 하나 인수하는데 대표이사 시킬 만한 분 좀 소개시켜 주세요”
“형, 이번에 자회사를 상장 시켜볼려고 분사하는데, 대표이사는 밖에서 좀 모시고 오고 싶어요”
“거시기, 회사 직원들이 좀 마음에 안드는데, 어디까지가 잔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거겠죠?”


요지는 어떤 대표이사가 좋은 대표이사인가? 그리고, 그런 대표이사를 어떻게 꼬셔내나? 그리고 나는 그런 대표이사인가? (요 마지막 질문은 본인은 모르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참 그러하다).

뭐 본인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냥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드릴 수 밖에. 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내가 바라보는 좋은 투자의 비법은 딱 두 가지 이다. (A) 좋은 산업에 지배력이 있(을 수 있)는 회사를 찾아서, (B) 좋은 경영진을 꾸려서 내보내는 것. 물론 투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렇게 (C) 투자한 걸 잘 파는 거겠지. 그런데 좋은 회사는 원래 팔기 쉽다 (때깔이 좋은 고기가 잘 팔리는 것 처럼). 그래서 좋은 회사를 만드는게 중요한데, 재미있는 건 이 (A)와 (B)의 주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즉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건 5~6년 단위로, 대표이사를 찾는건 1~3년 단위로. 즉, 한 회사에 투자하면 보통 대표이사를 한 두 번 바꾼다는 소리다. 물론 좋은 대표이사를 찾으면 리사이클 한다. 지금까지 필자와 같이 일한 대표급 경영진 중 제일 오래되신 분은 올해로 벌써 12년차도 계시니깐.

자. 그럼 왜 경영진 파견 단계는 사이클이 짧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대표이사의 수명이 투자 수명보다 짧기 때문이다.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냐고? 그렇다. 대표이사는 올라갈 때가 없으니, 잘하면 대박, 잘못하면 모가지이다. 뭐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대표이사를 찾을 떄 필자가 종교적으로 믿고 있는 원칙들이 있다. 나름 비법, 아니 꼼수들을 살짝 나눠보자.
제1원칙: 회사의 성장 단계에 따라 맞는 대표이사가 있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필자도 이 제1원칙을 십 수 년 전부터 흠모하면서 따르고 있던 당시 C모 그룹의 H모 대표님꼐 직접 배운 교훈이다.

당시 C그룹에서 신사업으로 시작한 A회사는 그야말로 그룹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였다. 유럽계 B기업과의 JV로 만들어진 A회사는, 유럽 및 홍콩 시장에서는 검증되었으나 한국현실에 맞지 않는 사업모델로 인해 적자를 거듭하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섹터는 잘 찍었는데 정작 서비스는 한국 고객의 입맛과 맞지 않고, 겹겹히 쌓인 국내 규제 환경 때문에 쉽사리 사업 방식을 미국에서 성공한 모델로 바꿀 수도 없는, 그야 말로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였다. 섹터가 쑥쑥 크고 있으니 쉽게 접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한국 식으로 된장도 바르고 참기름도 칠려고 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 운운하며 JV파트너가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뒤돌아 보면, 이렇게 들어와서 망한 JV가 90년대에만 하더라도 참 많았는데, 어쨌거나 이 A회사는 꾸역꾸역 간신히 사업모델을 야금야금 바꾸면서 살아 남았다.

이렇게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A회사를 그래도 우리같은 사모펀드가 인수 검토를 할 만큼 돌려놓은 건 다름 아닌 H대표님이었다. 사업 극초기 신사업담당 본부장부터 시작한 H대표는, JV가 삐걱 거리는 걸 몇 년 간 고쳐볼려고 하다가, 결국 C그룹 회장님을 잘 꼬셔서 JV의 나머지 지분을 비교적 비싼 값에 되사오고, A회사의 브랜드, 서비스, 제품 믹스, 확장 방법까지 다시 뜯어 고쳤다. 이른바 한국식을 잘 변화시킨 것이었다.

어찌어찌해서 원금 회수의 기회가 다가오자 C그룹은 과감히 매각을 결정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필자는 실사에 들어갔는데, 뒤져볼수록 재미있는 사실은, 창업한 지 6-7년 밖에 안되는 비교적 어린 회사에 창업 공신이 별로 안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대표님, 원래 같이 시작하시던 분들은 다시 그룹으로 되돌아 가셨죠?”

아무 생각없이 툭 내던진 질문아닌 질문에 H대표님의 눈빛이 헤어진 첫사랑을 떠올리는 마냥 흐려지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그러고는 속상한 듯 한숨을 푹 내려 쉰 다음 나누게 된 H사장님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야말로 개고생의 향연이었다.

“거의 다 내보냈어요. 두 번 정도 갈아 엎었죠”

JV로 회사를 처음 만들 당시 본부장이었던 H대표님은 해외에서 검증된 사업모델을 들고 들어왔기 떄문에 이른바 JV 상대방과 말이 좀 통하고, 매장을 뽀다구 나게 잘 뽑아 낼 수 있는 팀들로 구성했다. 영어도 좀 하고, 서류도 좀 잘 만들고, 출장도 다니고, 그러면서도 현장도 다닐 수 있는. 문제는 이렇게 시작한 신사업이 과투자와 한국과는 맞지 않는 제품/서비스로 인해 적자에 시달리는데에도 기존 경영진들은 대기업 마인드로 적자폭을 줄이는데에만 집중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수년간 돈만 까먹는 실패한 사업이라는 그룹의 눈총에 시달리던 H대표님은, 발상의 전환과 강한 ‘창업자 마인드’가 없이는 근본적인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JV 지분을 되사옴과 동시에 ‘뽀대나는 팀’에서 ‘흙먼지 먹는 팀’으로의 체질 개선에 돌입하였다. 즉, 처음 이 사업을 같이 시작한 빠다맛 창업 공신들은 결국 거의 다 내보내고, 양판점, 도매상, 잡화점 가맹사업을 실제로 해 본 “시장통” 경영진으로 싹 다 바꾸었다. 최초 팀이 만들어둔 ‘뽀다구는 나지만 나랑은 상관이 크게 없던” A기업의 매장들은 두번째 세대 경영진들을 통해 ‘재미있고 흥미로운’ 가게로 거듭나게 되었고, 작지만 성장하는 재무재표를 비로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치만 이것도 잠시. 몇 년 만에 매출이 수십억원대에서 500억원 대로, 매장 숫자도 10개 단위에서 30개 단위로, 장소도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커지게 되자 여기저기서 애써 묻어둔 문제들이 삐져나오게 되었다. IT 문제, 경영 계획 문제, 매장과 본사 관리 인력의 HR 문제, 교육, 온라인 사업, 브랜딩, 공급망 관리 등 제대로 성장하기 전 여기저기서 문제점들이 튀어나왔고, 현장형/시장통 실무진들은 정리보다는 현장에 가까웠기에 하루하루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급급하였다.

사장이 된 H대표는 결국 또 다른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경영진의 전면 교체. 제2의 창업공신이자 만년 적자 사업을 흑자로 돌린,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우같은 직원들을 다시 내보내고, 1000억원 이상 단위의 사업을 관리해 본 인재들로 회사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꾸려진 3세대 경영진들을 당시 30대의 젊은 필자는 만나고 있었다.

이 투자는 여차저차해서 아쉽게도 놓쳤지만, A기업은 이후 몇번의 Bolt-on 인수를 통해 현재는 조단위 매출을 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아, 필자는 바보이다 투자 바보라고 불러주시라). 아까운 건 아까운 거고, 여기서 배운 철학, 그리고 H사장님과의 인연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큰 모자람이 없었다. 몇 천억을 벌 기회를 날리고야 필자가 깨닫게 된, 피같이 생각하고 꼭 기억하는 레슨들이 있으니, 그 비법을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사람의 그릇은 안 변한다, 회사의 단게에 맞는 사람을 찾아라
2) 회사가 커질 수록 “할 줄 아는 사람”에서 “누가 잘 할지 아는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


H대표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인데, 본인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서 100억대 매출을 하는 대표이사에서 500억, 3000억을 넘어 1조 단위까지 관리하는, 초샤이아인 급의 대표이사로 진화하였다. 필자의 경험상 이건 길 가다 우연히 100만원짜리 현금 다발을 주워서 꿀꺽하는 확률과 비슷하다. 통상은 우리는 이런 요행을 바라면 절대절대 안되고, 회사의 매출이 한단계씩 올라갈 떄 마다, 그리고 주요 경영 초점이 바뀔 떄 마다 각 단계에 맞는 대표이사를 제일 먼저 교체해야 한다.

필자도 지난 십수년간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태어났다가 꽃폈다가 낙엽처럼, 가을날 빠지는 앞머리처럼 저물어 가는 걸 봤는데, 이유야 어쨌건 대부분은 대표이사의 그릇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한 경우 모 VC는 투자 검토를 할 떄 창업주의 관상과 사주까지 본단다. 그 방법이야 어쨌던 대장의 그릇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특히나 회사가 커질수록 한사람의 그릇에 담기에는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에, 결국 개인의 슈퍼스타에서 조직을 잘 리드하는 리더형 대표이사로 바뀌어야만 한다. 슈퍼스타 선수 출신의 골프 티칭 프로나 야구 감독이 잘 없는 이유도 비슷하다.
제2원칙: 첫인상이 중요한 거 같지만, 같이 일해본 사람의 오래된 인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
두번쨰 중요한 원칙은 첫인상에 속지 않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엄청난 통찰력과 사전 공부, 그리고 전략적으로 잘 준비된 일련의 즉석 시험문제들이 필요하다. 문제는, 대표이사 급 정도를 고려할 만큼 경력이 준비된 후보라면 첫만남에서 상대방이 무엇을 보는지, 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는 것!

특히 필자도 종종 속았던 것은 영업으로 큰 대표이사 후보들이었는데, 필자도 영업을 좋아하다 보니 사람만나서 수다떨기 좋아하는 두세명이 모여서 히히덕 거리며 즐거운 첫만남을 가질 확률이 높은데, 이런 후보들은 대표이사로서 반드시 필요한 ‘현실적인 비관주의’ 혹은 ‘sanity check’에 대한 개념이 낮을 확률이 높고, 결국 ‘으쌰으쌰’ ‘할 수 있다’ 주의가 강하게 주입된 영업형 대표이사가 초기 선임되었을 때 그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검증되지 않은 전략을 이것 저것 시도해보다가 돈과 시간을 같이 깨먹는 경우가 다분히 많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그래서 첫만남에서는 서로를 소개하고 (어차피 상대방도 우리가, 혹은 필자가 사이코인지 아닌지 검증을 하고 싶을테니), 회사의 상황에 필요한 스타일의 리더인지 (즉, 본인이 직접 하는 스타일인지, 잘 하도록 코디네이션을 잘 하는 스타일인지), 꼭 필요한 스킬들이 구비되어 있는지만 확인 하는데 집중한다. 결국, 첫만남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딱 두번째 만남을 갖고 싶을 만큼만 좋으면 된다.

그리고 이건 진짜 필자만의 비법이라 이야기 안해줄려구 했는데, 필자는 첫만남 동안 서로 호구조사를 서로 하면서 운 좋게 같이 아는 지인이 있는지 꼭꼭꼭 알아본다. 이렇게 우연히 서로 잘 아는 공통의 지인이 걸리면 아주 좋은데, (1) 믿을 만한 reference check (평판 조사)의 소스가 하나 생기고, (2) 그 공통으로 아는 지인들의 그룹을 참조해 보면 어떤 사회생활을 했는지도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판 조사가 나와서 말인데, 조심해야 할 점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리는 대표이사 후보애 대한 평가 혹은 험담은 절대로 귓등으로만 들으라는 점이다. 아니, 차라리 안듣는게 제일 좋다. 이렇게 평판 조회를 한다는 게, 내가 그 후보 자체를 잘 모른다는 소리인데, 잘 모르는 사람X에 대해 내가 다시 한 번 더 잘 모르는 사람Y에게 물어본다는거 자체가 엉망 진창의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내려야 할 투자의 가장 중요한 두가지 결정 (회사 찍기와 대표 찍기) 중 하나를 쌩판 남이고 잘 모르는 사람 Y에게 의지 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나는 바보 멍충이가 된다.

반대로 필자는 후보자와 일단 첫만남을 가지고 가능하면 필자가 잘 아는 지인 (즉 공통 지인) 중 후보자의 대학교 단짝, 회사 사수, 승진 시킨 사람, 같이 잘린 사람, 수제자, 옛날 여자친구 (응?) 등을 찾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보통 서너 명 찾아내면 일관적인 메시지가 나오는데, 이를 내 첫인상과 레쥬메 상의 경력을 조합해보면 산신령이 펑 나타나서 그 후보자의 미래를 보여준다!!!

대표급 인사를 찾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경우 그 대표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사생활에 대한 소문이 따라다닌다. 직원을 팼다는 둥, 법카에 손을 댔다는 둥, 술먹고 여직원에 손을 댔다는 둥, 바람을 폈다는 둥, 도박에 빠져서 빚더미에 앉았다는 둥 필자한테만 해도 지난 18년 넘게 온갖 음해성 오지랖성 레퍼런스 체크가 들어왔다. 물론 이런 소문이나 음해가 없는 깔끔한 사람이면 제일 좋겠지만, 이런 것들을 구조적으로 너무 자주 듣다 보니 그 진위에 대하여 검증하는 나름의 방법이 생겼다.
(1) “그룹의 인사팀 통해서 확인했다…” ? 이건 십중 팔구 음해인데, 보통 정치적 싸움 중이던 반대편 인사가 경쟁자였던 후보자를 내칠려고 만들어 내거나 조장한 누명이기 쉽다. 이런 패턴의 음해라면 필자의 필터에서 거의 80% 이상은 걸린다. 그나저나, 그 그룹의 인사팀 여러분, 이런 개인정보를 누출하면 절대 안되신다!!!
(2) “ 전 직장 동료한테 들었다…” ? 이것도 소스와 사실 여부가 상당히 의심 스럽다. 많은 경우, 그 동료라는 사람도 단순히 같은 회사 혹은 그룹에 있으면서 내부적으로 돌아다니는 풍문을 들어 전했을 경우가 많다. 그 직장 동료는 누구한테 들었는지 물어봐야한다. (뭐 친구한테, 아님 그냥 알아 이런 식이면 100퍼다).
(3) “블라인드에 떡하니 나와 있다…” ?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외계인에 납치된 미국인이 지금까지 수백명이 넘는다. 엘비스는 아직 살아있고, 미국 대선은 조작되었다… 뭐 그렇지 뭐.
정 불안하면 같이 술 한 번, 골프 한 번, 고스톱 한 번 쳐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꼭 본인한테 물어보라. 풍문으로 들은 것만 가지고 속 썪이지 말고. 그리고 지금까지 위와 같은 풍문이 진실이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게 여자 문제, 남자 문제이면 개과 천선 하기도 한다. 트럼프 옹은 대통령 까지 하지 않았는가.
제3원칙: 간판에 휘둘리지 마라
마지막 원칙은 절대 간판, 학벌, 경력에 휘둘리지 말라는 점이다. 필자가 뽑았거나, 뽑을 뻔 했던 대표이사들 중에 나중에 결국 대박 실패로 끝났(거나 끝날 뻔 했)던 사례를 뒤돌아 보면 대부분 국내 20대 그룹 최고 경영진 출신이거나, Fortune 500에 포함되는 글로벌 기업의 한국/아시아 최고 경영진 출신이었다. 저번에도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스펙은 너무 훌륭하지만;

- 이 분들을 뒷바침해주는 똑똑한 참모와 조직이 없으면 본인이 직접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 자존심이 쎄서 본인이 실패하거나 PE 주주들한테 잔소리를 듣는 것을 용납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다가,
- 주변에 늘 똑똑하고 멋드러진 직원들이랑만 일하다가 지방 소재의 회사에서 중하급 학교를 나온 ‘현장 중심’ 경영진들을 무시하기 쉬운,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위의 3 문제점들이 인터뷰를 통해서는 검증하기 매우 어렵고, 본인들도 이렇게 행동할 줄 모르고 왔다가 어이쿠 하고 말아먹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도 해외 수출을 키우기 위해 R기업을 인수하고 한국 대표이사로 글로벌 기업인 G어쩌구 사의 COO를 전격 영입해서 키워봤는데, 그렇게 훌륭하고 에너지 넘치던 분이 딱 5개월 일하고는 본인이 번아웃 되어서 퇴사 의사를 먼저 밝혀왔다. 똘똘이 스머프로 자기 눈에 차는 직원이 없다보니 혼자서 좌충 우돌 하다가 조직에도 적응을 못하고, 결과는 결과대로 안나오고, 불평만 하다가 서로 얼굴 붉히는 일만 벌어진 케이스였다. 이 다음부터 필자는 글로벌 기업 최고임원 출신은 절대로 다시는 대표이사로 뽑지 않는다.

간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매우 화려해 보인다는 점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제일 꺼리는 유형은 매 3년마다 한번씩 이름만 들으면 알꺼같은 멋지기 멋진 외국계 기업 혹은 대기업의 자회사들을 옮겨 다니는 분들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 멋진 전직 경력에 혹해서 뽑았다가 밑천이 다 털려서 3년만에 냉큼 다음 호구를 향해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멋들어진 직장 5군데 보다는 진국인 지방의 중견기업 한 곳에서 15년간 뼈를 갈아넣은 분들이 훨씬 낫다. 이런 분들이야 말로, 현장도 알고, 오너 조직에서 일할 때 벌어지는 장점과 폐해도 알고, ‘나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렇게 스스로 칼을 갈고 축적한 에너지도 남아있다. 언듯보면 화려하진 않지만 이런 분들이 진짜 실속있는 대표이사 후보감이다.

그럼, 학벌도 전혀 보지 말아야 할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좋은 학벌은 ‘기본’은 해준다. 학벌이 좋다는 건 학교다닐 때 성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도 적당히 좋고 숙제도 열심히 했다. 즉, 슈퍼스타 이기 보다는 안전빵에 가깝다. 특히 SKY출신이라면 네트워크도 비교적 단단하고 (그래서 검증이 쉽고), 자존심도 쎄서 돈사고도 안(혹은 덜) 친다.

그럼 가장 이상적인 대표이사는 어떤 사람일까? 필자 기준으로는 조직 생활과 창업을 같이 해 본 사람이다. 조직 생활없이 창업만 해본 사람 (예를 들어 스타트업 대표이사)은 극 초기 회사 정도는 맡길 수 있는데, 우리같은 사모펀드에서 맡기기에는 후보의 이력/성향과 회사의 성장 단계가 맞지 않아서 필자는 그냥 과락을 시킨다.

반면에 대기업 혹은 컨설팅, IB, 회계법인 같은 professional firm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해 본 사람이라면, 체계와 아이디어가 잘 밸런스를 이룬다. 이와 비슷하게, 창업을 해서 exit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역시 아주 안정적이고도 믿을 수 있는 대표이사 후보가 된다.

자 그럼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뽑는 대원칙 세 가지를 나눠 보았다. 그럼 이걸로 끝인가? 뭐 좀 섭섭하신가? 그럼 아주 간단히 실행 방법을 알려주겠다.
실제로 대표이사를 뽑는 방법
1) 하수: 헤드헌팅 사를 사용한다
헤드헌팅사를 활용하는게 나쁘진 않다. 필자도 본인의 회사 직원을 뽑을 때 늘 이용하는 단골 헤드헌팅사를 애용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반드시 ‘단골’ 헤드헌팅사여야 한다. 단골이 없다면 뜨내기 손님이라는 소린데, “언제봤다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한 번에 대표이사를 맡기나?”와 동일한 원칙으로 “언제봤다고 생판 처음 보는 헤드헌터 한테 후보 추천과 평가를 맡기냐?”라고 반문 하겠다. 특히 헤드헌터를 이용하면 결국 뽑히는 사람의 연봉의 %로 인센티브가 정해지기 때문에 항상 실제 실력보다 부풀리거나, 필요한 회사의 단계보다 좀 무리하게 큰 회사에서 사람을 빼오는 걸 추천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레퍼런스에 대해 헤드헌팅사에 의존하면서 정작 뽑는 본인은 그 후보에 대한 실사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단골 헤드헌팅사를 만들어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중수: 경쟁사 대표이사를 업어온다
헤드헌터한테 냉름 맡기는 거보다는 좋은 방법이, 경쟁사의 월급쟁이 대표이사를 뽑아오는 거다. 대표이사가 아니라 영업헤드. 혹은 기술개발원장 등이면 이게 상당히 좋은 전략인데, 대표이사는 가끔 좀 애매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대표이사가 옮긴다고 해서 경쟁사의 브랜드나 영업조직, 고객사, 제품기술이 옮겨오는게 아닌지라, 고만고만한 기술과 제품에서 대표이사의 화려한 인맥과 개인기가 잘 통하는 산업에서만 이런 전략이 잘 먹힌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쟁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송사에 휘말리거나, 무리하게 빼오면서 필요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래도, 금융업종, 영업 위주의 소비재, commoditize된 생산재 등의 산업에서 무난하게 써먹을 수 있다.

3) 고수: 다른 업종 2-3인자를 찾아서 키워먹는다
이건 난이도가 좀 있지만 통하기만 하면 아주 폭발적인 방법이다. 보통 오너가 직접 대표를 하는 회사에서 실무는 다하는데 그늘에 가려져 있는 2-3인자를 뽑아와서 날개를 달아주는 전략인데, 동종업 보다는 유사업종에서 찾는게 ‘전략의 창조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잘하면 아주 대박인 전략이다. 통상 컨설턴트 출신 경영진들이 일반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에서 실무경험을 쌓고 있을 때 업어오는 전략인데, 이를 위해서는 내가 영위하고 있는 업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미디어 산업 출신의 슈퍼스타 임원 M을 식품회사 K에서 모셔와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연애인 인맥을 식품 브랜드 광고에 도입해서 대박을 낸 케이스라던지, 리테일 전문 그룹에서 M&A를 담당하던 임원 T를 업어와서 화장품 회사 대표이사로 대박을 낸 케이스라던지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는데, 결국 B2B와 B2C, 제조와 유통, 내수와 수출 등 큰 틀에서 활용가능한 경험을 가진 유능한 경영진에 배팅해 보는 게 주효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사모펀드 운용역 출신을 경영진으로 쓰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데, 역시 buyside에서 쓴맛을 경험한 경영진은 위기에도 강하고, 숫자와 영업, 마케팅 모두에 능하다. 내 주변에도 아주 아끼는 후배 두명이 경영진으로 탈 바꿈해서 회사를 몇배씩 키워가고 있다.

4) 없수: 내가 한다 (왜?)
필자가 제일제일 비 선호하는 건, 오너가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이다.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자르기가 힘드니, 경영이 잘못 되는 경우, 혹은 내 그릇 보다 회사가 더 커졌을 때 본인의 능력치에 회사의 미래가 가둬지는 절대적인 단점이 있다. 외국의 경우, 오너 패밀리가 세대를 이어내려올 수록 경영진보다는 투자자로 변모하는 걸 절대적으로 선호하는데, 뭐 매일 출근을 안해도 되거나,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걸 투자를 통해 다 해볼 수 있다는 점이나, 회사의 성장 단계에 따라 경영진을 수시로 교체해볼 수 있다는 점이나 등등 수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읽는 오너 독자 여러분이 진짜로 경영이 좋아서 꼭 경영을 해야하겠다면 본인의 그릇을 알고 언제 물러나야할지를 파악하던지, 아니면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본인의 그릇을 깨고 나와 더 큰 세상으로 나올 각오를 해야한다. 아니, 하기를 바란다. 꼭.

대표이사를 뽑고 육성하는 방법은 각 회사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 역량, 경험, 비전 등등 원하는 바는 비등비등하다. 돈도 잘벌고, 키도 크고, 머리 숱도 많고, 성격도 좋은 남편감을 찾는 것 만큼이나 대표이사를 찾는 것은 이미 무한 경쟁에 접어들었다. 단단한 원칙 하에서 나만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들이 주저할 때, 두리번 거릴 때 한걸음 빨리 인재를 찾아보자. 평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키워 보자.

그래서 나를 대신해 내 조직을 맡아줄 대표를 찾을 수만 있다면 나의 여름 휴가는 1주일에서 10주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어제 훌륭했던 대표라도 오늘의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고 안성맞춤인 그릇을 찾아보자. 그리고, 내가 그 그릇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이런 강박에서 벗어날 때, 바로 그 때, 하와이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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