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야심작인 대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전기차 'EV9'이 사전계약 인기에 비해 출시 초반 국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기존 동급 내연기관 SUV의 약 2배에 달하는 가격 탓에 '신차 효과'를 못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행 안전 이슈에 대한 우려도 악재다.
7일 기아에 따르면 EV9은 지난달 국내에서 408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출시 첫 달인 지난 6월 1334대, 7월 1251대였는데 8월에는 3분의 1토막이 났다. 앞서 기아 EV6가 출시 이후 첫 3개월 간 7300대가 판매된 것과 대조적이다.
EV9은 국내 첫 3열 대형 SUV로 주목을 받았다. 기아 전기차 라인업 중 가장 긴 501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19인치 휠 2WD 모델 산업부 인증 기준)에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등 편의 기능이 대거 탑재돼 사전예약자만 1만명이 넘을 정도로 흥행을 예고했었다.
EV9의 초반 판매 부진 이유로는 높은 가격이 꼽힌다. 국내 첫 대형 전기 SUV인 만큼 EV9은 트림별 가격이 7337만~8169만원에 책정됐다. EV9 최고가 트림에 옵션을 더하면 차값이 1억원에 육박한다.
국고 보조금 기준인 차량 가격 5700만원을 넘기 때문에 보조금은 절반이 지원된다. 보조금을 받으면 6000만원대 후반~7000만원대로 구매할 수 있다. 진입(엔트리) 가격이 3896만원인 팰리세이드, 3150만원(디젤)인 카니발의 2배 수준이다.
501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달성하기 위해 배터리 용량(99.8kWh)을 늘렸고, 이 때문에 차값을 낮게 책정하기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 가격은 평균 45% 안팎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V9을 둘러싼 상황도 여의치 않다. 최근 제조사들이 전기차 가격을 빠르게 인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위 트림 풀옵션 기준 1억원에 달하는 가격대로는 소비자들이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엔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달 국내에 기존보다 2000만원 저렴한 '중국산 모델 Y'를 들여와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차값을 크게 낮췄다. 모델 Y의 경우 보조금을 받으면 4000만원대 중반까지 가격이 내려간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수입차 회사들도 EQS SUV 등 전기차 가격을 최대 2600만원까지 깎아주고 있다. 국내 완성차 중에선 KG모빌리티가 중형 전기 SUV 토레스 EVX를 다음달 3000만원대에 출시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수익성을 일부 포기하고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가격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기차 시대의 수익성은 차량 판매보다는 자율주행과 여러 서비스로 창출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시 초반 품질 이슈가 제기된 점도 뼈아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EV9은 지난달 램프 제어장치 신호 처리 오류, 충전 제어 오류, 변속 제어장치 P단 인식 오류, 자동차 제어장치 내 진단 데이터 누락 등이 발견돼 무상수리를 진행했다. 또 후륜 구동 전동기 제어장치 소프트웨어 설계에서 오류가 발견돼 주행하다가 멈출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아는 해외 판매가 시작되면 판매량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아는 올 4분기 미국에 EV9을 출시한다. 현재 사전예약 날짜와 판매 가격 등을 검토 중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고려해 빠르면 내년부터 조지아주 공장에서 현지 생산이 가능해 보조금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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