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그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색을 올리고 갈아내고, 올리고 갈아내는 작업을 5~6개월 반복한다. 습식 사우나처럼 온도와 습도가 높은 곳에서 말린 뒤 방호복을 입은 채 사포로 갈고, 또 칠한다. 말린 뒤에도 색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수개월에서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옻칠 화가는 수행자에 가깝다.
옻칠을 현대회화의 한 장르로 만들어가고 있는 여성 작가 채림과 김미숙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채율갤러리에서 2인전을 열고 있다. 채율은 칠보 자개 옻칠 브랜드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 등 유명 인사들이 소장한 하이엔드 헤리티지 브랜드다. 대통령들이 해외 국빈 방문 때 빼놓지 않고 선물하는 자개함 등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이 공간을 플래그십 매장 겸 갤러리로 꾸몄다.
전통 가구와 공예품으로 가득한 이 공간은 2023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을 맞아 한국을 찾은 VIP 컬렉터와 미술계 관계자에게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떠올랐다. 8월 31일까지던 전시 기간을 9월 10일로 연장한 이유도 “해외 손님에게 우리 멋을 알리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해서다.
지하 1층엔 김 작가의 작품들이 가구, 도자기와 함께 놓여 정취를 더한다. 옻칠로 표현해낸 여성의 아름다운 눈빛과 선, 무릉도원과 같은 산수화 풍경이 공간과 제법 잘 어울린다.
채 작가는 지난해 베네치아비엔날레 특별전 이후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아리랑 칸타빌레’ 연작 160점을 지하 2층에 전시했다. 산과 바다, 하늘과 들판처럼 작디작은 풍경들이 연작을 이뤄 하나의 거대한 색동산수화를 만들어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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