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넣는다고 '소셜믹스' 될까요?[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3-09-07 08:06   수정 2023-09-13 15:29


강남 재건축 최대어인 ‘압구정3구역’ 설계사 선정을 놓고 조합과 서울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설계업체가 제시한 용적률을 문제 삼아 경찰에 고발하고 조합이 설계를 재공모하기를 요구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조합도 설계사 선정 총회를 강행하고 문제업체를 설계사로 선정하면서 ‘압구정3구역’ 재건축은 첫 단계부터 파열음이 생기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입장은 소셜믹스 취지를 조합에서 훼손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설계에서 임대주택과 일반 분양분을 조합원과 분리한 점이 대표적입니다. 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함께 살면서 계층 분화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소셜믹스의 정책 취지를 조합이 부정했다는 겁니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압구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서울시가 원하는 정책을 시행하는데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큽니다. ‘압구정3구역’으로 인해 소셜믹스가 다시금 부각되고 있습니다.

소셜믹스(social mix)란 아파트나 주택 단지 내에 분양 물량과 임대 물량을 같이 시공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1980년대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주택용지가 부족해지자 부자들, 중산층과 서민들이 서로 격리되면서 빈부격차가 사회계층 간 이해부족과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입니다. 경제적으로 다른 계층을 한 아파트 단지 내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교류를 늘리고, 각종 편의시설을 함께 이용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계층격차로 확대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도입합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브라질, 멕시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를 시작으로 1990년대에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리옹, 일본 도쿄, 오사카, 대만 등으로 퍼져갑니다.

소셜믹스는 그리 성공한 정책이 아닙니다. 좁은 국토와 집중된 인프라로 지역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홍콩, 싱가포르) 이거나 자산격차가 심하지 않은 국가(덴마크, 네덜란드)에서는 다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국가(영국, 프랑스, 미국)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입니다.

서울시가 2022년 1월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공공주택의 소셜믹스를 완전히 구현하고 차별요소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양적공급에 치우쳤던 공공주택 정책 패러다임을 ‘주거복지 우선주의’로 대전환해 취약계층의 주거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핵심은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인식의 개선입니다. ‘공공주택 사전검토TF’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고, 21개 항목의 체크리스트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 ‘압구정3구역’과의 갈등도 이런 정책 변화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소셜믹스를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공공임대주택을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해외국가에서는 주택바우처, 사회주택 등 다양한 정책을 사용합니다. 우리와 경제체제가 비슷한 미국은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대신 주택 바우처 지급정책 중심으로 전환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은 슬럼화되고 관리가 어려우며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지역에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오히려 바우처(쿠폰) 지급을 통해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입니다. 임대료 부담이 큰 저소득층에게 소득의 30%만 임대료로 지출하게 하고 나머지 차액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방식입니다. 주택 바우처는 낙인문제까지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주택 바우처를 받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셜믹스를 도입했지만 동을 달리해서 임대주택을 차별하는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소셜믹스가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빈부의 격차 때문입니다. 소득을 높이고 자산축적에 도움을 줘서 자립기반을 만드는 일이 더욱 필요합니다. 공공임대주택의 목적은 일견 좋아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주거비 부담이 높은 계층에게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은 다양한 장벽들을 헤치면서 나가는 기나긴 여정입니다.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은 불편함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오랜 기간 편안하게 임대주택에 거주한다면 자산축적과 독립적인 사고는 사라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원룸에서 월세로 시작하다 여건이 되면 조금 더 큰 집을 전세로 얻습니다. 전세로 몇 년을 보내고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목적이 임차인들의 주거안정이지만 가장 큰 피해 또한 임차인들이 받게 됩니다. 최근에는 주택가격이 조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4년전과 비교하면 많이 올랐습니다. 임대주택에 편안하게 거주했다면 박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소셜믹스입니다. 이 분들의 자산축적과 독립적인 사고를 갖게 만드는 것이 소셜믹스 도입 목적인 자산격차를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공공임대주택이 꼭 필요한 계층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단순히 사회초년생이라는 이유로 자산축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임대주택을 장기간 권하는 것은 그리 좋은 정책이 아닙니다.

향후 주택정책의 방향으로 오히려 에이지 믹스(age mix)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실패한 소셜믹스 정책을 큰 고민없이 도입하는 것보다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사회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에는 연령대별 주거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은 실버타운(유료노인홈)이 2021년말 기준으로 전국에 무려 1만7000개 소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900만에 가깝지만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은 38개소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LH와 비슷한 일본의 UR도시기구(UR都市機構; Urban Renaissance Agency)에서는 친족끼리 근거리에 거주하면 임대료를 최대 30% 할인해줍니다. 해외의 다양한 에이지 믹스 정책을 확인해서 하루빨리 국내에도 도입했으면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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