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의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는 대개 멋진 가로수들이 있다. 더울 때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도시의 멋을 더해준다. 서울 시내에도 약 30만 그루의 가로수가 있어 밀집 도시의 삭막함을 줄이고 통행자와 시민에게 청량감을 안겨준다. 한여름에는 아스팔트 거리나 콘크리트 건물들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준다. 하지만 나무를 학대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가지치기를 심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신주 접촉으로 인한 감전 위험, 태풍·폭우 시 넘어짐 대비, 꽃가루 날림, 간판을 비롯한 건물 가림 등 이유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강전지(가지를 과도하게 많이 치는 것 또는 무리한 수형 축소)는 거리 미관을 망치고 가로수를 심는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가지를 마구 자르는 강전지 방식의 가로수 관리에 문제점은 없나.
시민들이나 가로수 주변의 주민 민원도 적지 않다. 대표적 가로수인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는 봄철 꽃가루를 많이 날리는데, 이로 인해 알레르기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가지를 많이 치면 아무래도 꽃가루가 적게 날린다. 좋지 않은 냄새를 유발하는 가로수도 있다. 은행나무는 가을철 열매가 떨어지면 특유의 과육으로 거리에 얼룩이 생기고 냄새도 좋지 않다. 이런 향에 민감한 시민들은 지방자치단체에 계속 관리 민원을 제기한다.
막 자란 가로수가 1·2층 등 저층 상가의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민원도 적지 않다. 멋 부려 만든 간판을 가로막고 장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건물의 유리창에까지 가지가 자라 벌레가 실내로 들어와 직원과 손님이 놀라는 일도 생긴다. 1층 상가의 불편 때문에 왕성한 가로수를 완전히 베어버릴 수도 없는 만큼 가지를 확실하게 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가지를 쳐도 대부분 가로수가 잘 자라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몇 년 지나면 대개 수형을 되찾는다.
그런데 적절한 관리 차원을 넘어 학대를 하고 있다. 매년 전국의 가로수 1만6000여 그루가 고사(枯死)하는데, 그 원인이 과도한 가지치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가로수나 나무도 하나의 생명체다. 오죽하면 ‘닭발 가로수’라는 말이 나오겠나. 기둥만 남기는 식으로 마구 자르니 건강하게 살 수가 없다. 가지를 치더라도 싹둑싹둑 마구 자르는 강전지가 아니라 부드럽게 다듬는 정도의 약전지가 옳다. 나무 전문가들이 나무의 수형을 다듬으며 멋있게 가꾸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파리·도쿄 등 세계 굴지의 오래된 도시에 가보면 정성 들여 가꾼 가로수가 많아 좋은 관광거리가 된다. 식물 생장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로수를 연구하고 공들여 다듬으며 키워야 한다. 그렇게 도시 자산으로 가꾸어야 도시의 품격도 올라간다. 전기 합선 같은 안전 문제에 대비하더라도 필요한 곳에 정교한 전지를 해야 하는데, 특정 거리 전체를 난도질하는 것 같은 만행이 드물지 않다. 획일적인 저급 자치행정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나 악취 유발 수종이라면 체계적인 수종 교체 작업이 필요하다. 임기응변의 즉흥적 가지치기로 마구 관리할 대상이 아니다. 가로수의 품종 관리 및 개량 같은 세심한 지자체 행정이 절실하다. 정원수 관리도 한번 해본 적 없는 비전문가들이 고층 사다리를 동원해 전기톱을 마구 휘두르는 방식은 곤란하다. 가로수도 제대로 관리 못 하면 후진국의 야만 행정 아닌가.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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