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9시40분 서울 신림동의 한 가정집. 무단 침입 후 집주인을 살해 위협하던 A씨가 현장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정신응급 합동 대응센터 소속 전문 요원 판단에 따라 응급 입원이 필요한 상황. 경찰은 현장에 동행한 기자에게 “운이 나쁘면 병원 입원에만 열 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며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와 치료는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A씨를 입원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14시간 30분, 병원을 찾는 데 이동한 거리만 125㎞에 달했다.
A씨는 이날 입원을 위해 다섯 곳의 병원을 돌았다. 처음으로 찾은 경기 고양 마두동 연세서울병원은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곧바로 이동한 서울 중곡동의 한 정신병원은 “혈액검사 등을 우선 해야 한다”며 A씨를 받지 않았다. 이후 두 시간 이상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찾은 평동 S병원 역시 “의사가 없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전날 오후 9시40분 시작된 병원 찾기는 다음날 낮 12시12분 서울 장안동 지혜병원에서 끝났다.
응급 입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72시간 동안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다. 정신질환자 신고를 받은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서울경찰청 정신응급 합동대응센터 경찰과 전문 요원이 출동한다.
최근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논란이 되면서 응급 입원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올해(1~8월) 응급입원 신청은 1만519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건수 1만133건을 넘어섰다. 올 1~8월 전체 정신질환자 중 837명(7.9%)이 입원에 실패했다.
흉기난동 피의자 중 상당수도 정신질환자로 분류된다. 지난달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 난동을 벌인 최원종(22)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19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두 명을 다치게 한 50대 남성도 미분화 조현병으로 치료받다 2019년부터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는커녕 응급 입원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는 과거에 한 번 이상 범죄에 대한 전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사법 당국과 의료시스템의 유기적인 조화로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응급 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24곳이지만 대부분 병원이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야간 입원이 가능한 곳은 국립정신건강센터를 비롯해 네 곳에 불과하다. 병상 가동률 역시 95%가 넘어 빈 병상을 찾기도 쉽지 않다. 폐쇄 병동 부족은 당면한 숙제다. 2018년 국내 최초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이 문을 닫았고, 지난해 성안드레아병원도 정신과 병동을 없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정신질환자 전문 의사가 부족한 만큼 대학병원 등이 나서 관련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장강호/안정훈 기자 callm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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