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공개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7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무력화됐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起)에 성공했다' 등의 분석도 나온다. 과연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을까. 반도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어봤다. 결론은 "놀랍긴 한데 중국 반도체 기술의 한계가 분명하고, 아직 한국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을 자극했기 때문에 '제 발등을 찍은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술력에 대해선 '예상보다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린 9000s는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SMIC의 7nm 공정에서 양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7nm는 '최첨단'은 아니지만 '첨단' 수준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와 TSMC는 4~5년 전인 2018~2019년께 7nm 공정에 진입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7nm 공정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썼다. 7nm 공정의 필수 장비로 알려진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중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은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EUV 노광장비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때 활용하는 장비다. EUV의 파장은 13.5nm다. 한 단계 밑 장비로 평가되는 DUV(심자외선) 노광장비 파장(193nm)의 14분의 1 수준이다. 그만큼 더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다는 의미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는 "삼성전자나 TSMC는 최첨단 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EUV 장비를 활용했다"며 "7nm 공정은 EUV가 없어도 '쿼드러플패터닝'을 하면 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성이 낮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정부가 지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7nm까지 오는 데 성공했지만 5nm 이하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의 주력 공정은 4·5nm고 3nm 양산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7nm가 DUV 노광장비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도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 같은 메모리반도체 기업이 있다. 특히 CXMT는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까지 선언한 상태다. 그런데도 화웨이 폰에 CXMT가 아닌 외국 기업 메모리반도체를 넣은 것을 보면 '중국의 메모리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황 교수는 "CXMT는 20nm대 공정에서 D램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삼성, SK하이닉스의 최첨단 D램이 14~15nm대인 것을 감안하면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중국의 EDA 기술력이 7nm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시높시스나 케이선스의 EDA툴을 무단으로 썼을 것이란 얘기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들도 시높시스나 케이던스 툴을 라이선스 없이 쓰기도 한다"며 "중국 EDA툴로 7nm 개발은 불가능할 것이고, 실제 미국산 툴을 도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현재 화웨이의 7nm AP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7nm 칩으로 알려진 것의 특성과 구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의 반도체 기술 개발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미국 정부가 더 강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더 강한 제재를 시작하면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화웨이의 기술 과시는 결국 제 발등을 찍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전무는 "현재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한국 기업을 위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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