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채무자 대신하는 채권자도 '배당이의' 소송 가능”

입력 2023-09-10 15:52   수정 2023-09-10 16:00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신해 다른 채권자의 채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때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대부업체 A사가 농협중앙회를 상대로 제기한 배당이의 소송에서 "원고의 소송 방식이 부적합하다"며 원고 패소로 결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위(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일)해 다른 채권자의 채권이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고 배당이의를 하는 경우에도 제기해야 할 소의 형태는 배당이의의 소"라며 이같이 선고했다.

배당이의의 소란 다른 채권자의 배당액을 줄여 자신에게 배당이 되도록 하기 위해 배당표의 변·경 또는 새로운 배당표의 작성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농협중앙회는 채무자 B씨를 상대로 구상금 지급을 청구한 결과 2017년 4월 지급명령이 확정됐다. B씨는 2019년 7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에 대해 강제경매 개시결정을 받았다.

2021년 1월 작성된 강제경매 배당표에는 1순위 군산시 148만원, 2순위 군산시 224만원, 3순위 농협중앙회에 6395만원, 가압류권자 승계인 겸 배당요구권자인 A사 361만원으로 기재됐다.

A사는 강제경매 배당기일에 출석해 농협중앙회의 배당액 중 일부인 1943만원에 대해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A사 측은 "농협중앙회가 가진 일부 채권이 이 사건 지급명령(2017년 4월)이 나오기 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농협중앙회 측은 “배당액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선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는 게 적법하다"고 맞섰다. 청구이의의 소란 확정판결 등 집행권원(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실현될 청구권의 존재와 범위가 표시되고 집행력이 부여된 공정증서)에 표시된 청구권에 대해 합당한 사유를 제시해 집행력 배제를 청구하는 소송이다.

1·2심은 농협중앙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 배당이의의 소는 채권자인 원고가 채무자를 대위해 피고의 배당액에 대해 배당이의를 제기한 것"이라며 "채무자가 채권자인 피고에 대한 배당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배당이의의 소가 아닌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채무자를 대위해 피고의 배당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원고도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고가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한 건 적법하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집행력 있는 집행권원 정본을 가지지 않은 채권자와 배당에 대해 다툴 땐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집행력 있는 집행권원 정본을 가진 채권자에 대해선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원심은 피고인 농협중앙회가 집행권원 정본을 가진 채권자로서 원고가 피고와 배당에 대해 다투려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상고심에서 '채권자가 다른 채권자에 대해 배당이의를 표시한 경우 다른 채권자의 집행권원 정본 보유 여부에 상관없이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는 판례(2013년 8월 22일 선고 2013다36668 판결)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채권자가 배당이의를 하면서 배당이의 사유로 채무자를 대위해 집행권원의 정본을 가진 다른 채권자의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등의 주장을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고는 배당요구 채권자로서 독자적으로 다른 채권자인 피고를 상대로 배당이의를 하면서 채무자를 대위해 피고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을 배당이의 사유로 내세울 수 있다"며 "그 후 피고가 집행권원의 정본을 가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피고를 상대로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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