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페이크는 농구 게임에서 상대방 선수가 앞에 있을 때 일단 머리를 흔들어 기만한 다음 슛을 쏘는 장면에서 유래한 용어다. ‘착시’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대방의 판단을 흐트러트린다는 의미로 통계학에서의 1종 오류, 2종 오류에 가깝다. 경제적으로는 가장 최근에 발표된 지표(헤드)가 추세에서 벗어나 갑자기 방향을 트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주 13일 발표될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결과에 따라 또 한 차례 헤드 페이크 논쟁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6월 9.1%를 정점으로 올해 6월 3.0%로 안정되던 CPI 상승률이 7월에는 3.2%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8월 CPI 상승률이 3.2%보다 낮게 나오면 7월 CPI 상승률은 헤드 페이크에 해당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고비 때마다 헤드 페이크를 잘못 판단해 ‘무용론’에 빠질 만큼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첫 사례는 에클스 실수다. 1929년 허버트 후버 정부 출범 이후 불어닥친 경기 침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물가가 오르자 당시 매리너 에클스 의장이 서둘러 금리를 올린 것이 대공황을 낳았다.
1980년대 초반에도 Fed는 또 한 차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2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자 폴 볼커 의장은 장고 끝에 Fed의 설립 목적에 충실해 금리를 17%까지 올렸다.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가안정 기조가 정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9%대로 내리자 물가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볼커의 실수’다.
헤드 페이크를 너무 의식해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실수도 있다. 2021년 4월 CPI 상승률이 직전월보다 2배 이상 급등하자 헤드 페이크인지 판별하기 위해 ‘평균물가목표제’라는 모호한 제도를 도입해 방치했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목표선인 2%의 4배 이상 오르는 화를 자초했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한 Fed는 작년 3월 이후 금리를 급격히 올려 일단 물가는 잡히는 추세다. 1980년대 초와 너무나 비슷하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물가와 고용지표가 헤드 페이크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는 점이다. 쟁점은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내려야 할지, 아니면 볼커의 실수를 교훈 삼아 물가가 완전히 잡힐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할지 여부다.
앞으로 전개될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7월 CPI 상승률이 헤드 페이크가 아니고 8월 실업률이 헤드 페이크로 판정되면 Fed는 금리를 추가로 올려 대응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빡빡한 노동시장이 풀리지 않는다면 7월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인플레이션 재발 조짐이 추세적으로 정착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7월 CPI 상승률이 헤드 페이크로 끝나고 8월 실업률이 헤드 페이크가 아니라고 판정되면 금리 인상 정점론이 고개를 들면서 시장 참가자의 관심은 언제 금리가 내릴 것인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빡빡한 노동시장이 풀린다면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가 정착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양대 시나리오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7월 CPI 상승률은 헤드 페이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8월에만 국제 유가가 20% 가깝게 뛴 데다 엔데믹 첫 여름 휴가철 특수로 3분기 성장률이 5.9%(애틀랜타 GDP 나우)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급 측 요인에다 수요 측 요인이 가세하면서 인플레이션을 풀어가기가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8월 실업률은 헤드 페이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매년 8월은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노동 수급 불일치와 병목 현상에 따른 계절적 요인으로 실업자가 늘어나는 시기다. 9월 이후에는 마찰적 실업자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실업률이 본래의 추세로 되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7월 이후 나타나고 있는 물가와 고용지표의 헤드 페이크 실체가 명확해질 때까지 Fed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급하게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 에클스 실수와 볼커 실수를 동시에 저지를 수 있다. 2년 전 실수가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 결과는 ‘Fed 무용론’과 ‘제롬 파월 교체’다. 한국은행과 이창용 총재도 주목해야 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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