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누가 원안자인지 밝히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같은 문제에 모두가 비슷한 대안을 제시할 리 없는데, 분명 ‘더 나은 입법’이 있다는 점에서 법안의 ‘저작자’를 밝히는 일은 입법부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됐다. 베낀 사람이 다수다 보니 정작 열심히 연구해 법안을 만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법안 자체가 저작권의 보호 대상, 즉 저작물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법안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가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저작권법 제7조는 법률을 ‘보호받을 수 없는 저작물’이라고 정한다. 법률도 저작물로서 최소한의 창작성을 갖출 수 있지만, 법률이 널리 활용돼 누구나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보호의 배제는 법‘안’에까지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법안은 그것을 처음 만든 사람의 창작물이 될 수 있고, 이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저작권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특정 법안이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개별 규정을 누군가 독점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누가 해당 법안·규정을 만들었는지 밝히는 것은 원안자의 노고를 인정하는 일일 뿐 아니라 책임감 있게 법안을 제출하도록 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발의했음에도 국회의원 명의로 제출되는 법안이 크게 늘었다. 반면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은 줄었다. 이런 우회로를 이용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이때 정부는 일종의 이면 저자(ghost writer)가 된다. 그렇다고 대표발의한 의원의 역할과 책임이 간과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발의하는 법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수정의견을 제시하면서 해당 법안 창작에 대해 지분을 갖는 ‘공동저작자’가 돼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법률을 접한다. 청탁금지법에는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아주대 석좌교수의 이름이 붙었다. 또 민식이법과 윤창호법은 동기는 다르지만 각기 피해자를 기리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법안을 제안하고 이를 입법에 이르도록 한 의원의 이름을 딴 법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오세훈법 정도밖에 없다.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의원 이름을 별칭으로 가진 법률이 많다. 예를 들어 저작권 분야에서 소니 보노 저작권연장법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는 것으로, 문화산업계의 지지와 정보자유론자의 질시를 한 몸에 받았다. 가수 겸 배우를 거쳐 하원의원이 된 보노는 이 법을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법안을 남긴 국회의원이 나오고, 그를 기리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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