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무엇인가. 일상적 수준에서 이뤄지는 점진적 개선과 달리, 혁신은 보다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혁신은 왜 필요한가. 늘 해오던 것을 같은 방식으로 계속 해선 원하는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은 늘 변한다. 이번 세기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일어난 일을 복기해 보면 불과 20여 년 동안 변화의 정도가 얼마나 컸는지 놀랄 수밖에 없다. 미·중 관계, 글로벌 경제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전방위적으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혁신은 이러한 극심한 환경 변화에 우리가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끔 해주는 사고와 행동의 근본적, 내재적 변화를 의미한다. 결국 혁신은 생존의 열쇠다.
혁신을 기업 경영의 맥락에서 풀어보자. 경영학에선 조지프 슘페터가 1942년 그의 저서에서 제시한 ‘창조적 파괴’를 혁신 관련 논의의 출발점으로 보는 게 일반적 견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1997년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파괴적 혁신’이라는 개념을 기업 경영자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후 기업인들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게 혁신이라고 믿게 됐다. 새로 부임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전임 경영자가 하던 것들을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하면서 혁신, 즉 파괴의 대상으로 여긴다. 회사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자들은 자사의 성과 향상을 위해 시장에 나와 있는 경쟁사들의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파괴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민한다.
그리고 상당수가 혁신을 어렵다고 여긴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하는데, 실제 혁신을 실천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지지부진한 게 현실이다. 생존의 열쇠인 혁신이 왜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는가. 먼저 조직 외부적으로 시장의 현상을 살펴보자.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이를 홍보하고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더 낫다고 주장해야 한다. 결국 경쟁 회사를 깎아내려야 사는 구조다. 고객 입장에서는 다소 모호할 수 있는 새로운 측면을 주입하는 방식의 소모적 경쟁전략 모습을 띨 가능성이 크다.
조직 내부의 혁신은 더 어렵다. 파괴해야 할 대상이 조직 외부에 있을 경우에는 그나마 조직 구성원들이 합심해서 일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파괴의 대상이 바로 나 자신, 우리 부서, 우리가 오랫동안 애착을 가지고 만들어온 제품이나 서비스라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자신의, 우리 부서의, 우리 회사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심각한 이슈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신의 실천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파괴의 대상 입장에선 필사적으로 혁신에 반대할 것이다. 특히 이해관계자가 시장의 직접적 거래관계 범위를 넘어 지역사회, 비영리단체, 기관 등으로 확장된다면 누군가가 파괴되는 혁신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혁신은 구호에 그치고 만다.
혁신은 꼭 파괴적이어야 하는가. 혁신이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기존의 것들을 보완하는 개념이 된다면 어떨까. 이렇듯 단순해 보이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통해 혁신을 본질적으로 재해석하는 개념적 시도를 두 명의 경영학 교수가 했다. 이제는 일상 용어가 돼버린 ‘블루오션’의 창시자인 프랑스 인시아드 김위찬·르네 마보안 교수다. 지난 30여 년간 두 교수는 혁신을 비파괴적인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혁신은 곧 파괴’라는 굳어진 관행적 사고가 비파괴적 혁신에 대한 생각을 가로막아왔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를 집대성한 결과를 최근 책으로 출간했다. 이른바 블루오션의 완결판인 셈이다. 실제 비파괴적 혁신은 도처에 있다. 책에서 소개한 안경, 생리대, 3M의 포스트잇, 마이크로 파이낸스 등이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파괴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대박’을 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5년 발간된 <블루오션전략>은 전략경영 분야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1980년 <경쟁전략>을 내놓으면서 쌓은 아성에 김위찬·마보안 두 교수가 과감히 도전한 셈이다. 출간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이른바 ‘블루오션 신드롬’을 일으켰다. 전 세계적으로 자그마치 4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한국에서만 40만 부 넘게 판매됐다. 해외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두 교수한테 자문을 구했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치혁신센터’를 설립하면서 블루오션 전략을 도입했다.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블루오션을 연구했다.
김위찬·마보안 교수는 활발한 자문과 함께 후속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2017년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블루오션 시프트>다. 두 교수가 실제 자문에 응하면서 축적한 경험을 녹여내 블루오션 전략을 체계적으로 현업에서 사용하는 매뉴얼식으로 구성했다. 그동안 블루오션은 기업의 경영전략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활용돼왔다. 심지어 교육 분야에선 학생들에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형태의 전 세계 고등학교 블루오션 경진대회도 매년 개최됐다.
비파괴적 혁신은 예전에 소개된 블루오션 전략의 완결판이라고도 할 만하다. 블루오션 전략과 비파괴적 혁신의 차이는 기존 산업의 경계에 걸치는가, 외부에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가로 엄격히 개념적 구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가치혁신에 있다. 김위찬·마보안 교수가 1997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출간한 논문을 블루오션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데, 해당 논문의 제목이 ‘가치혁신’이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진정한 혁신은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비용 내지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략경영의 주류 이론인 포터 교수의 본원적 전략에서는 가치를 높이려면 비용 내지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가치와 비용 간 ‘역의 상관관계’다. 김위찬·마보안 교수는 포터 교수의 설명에 과감히 반박했다. 포터 교수의 이론은 기존 산업 내지 시장에서 정형화된 방식으로 경쟁하면서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맥락에서 유효한 것인 반면, 김위찬·마보안 교수의 이론은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한 사고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다시 혁신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중장기적 전망은 차치하고 당장 내년 사업 환경을 예상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이러한 극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기업인들은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현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다. 가치혁신의 관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효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고객이, 나아가 세상이 느끼는 가치를 높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비용 내지 원가를 낮추는 노력이야말로 어떠한 사업 환경에서도 성과를 냄으로써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애써 경쟁자를 제압하고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려고 하지 말고, 고객과 세상의 가치를 높이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혁신의 본질적 내용이다. 김위찬·마보안 교수는 비파괴적 혁신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혁신은 파괴라는 관행적 사고를 벗어나 비로소 혁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최근 격변하는 환경이 특히 한국에 불리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과 여러 지표가 밝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 전망이 쏟아진다. 하지만 미래는 전망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다. 미래는 현재의 의사결정과 이어지는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 경영자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오랜 믿음과 일련의 가정들을 원점으로 돌아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면서 정리해 나간다면 혁신적 생각과 행동이 도출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절실함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한국 기업의 경영자들이 절실한 마음을 갖고 다시 혁신을 돌아볼 때다.
■ 김동재 연세대 교수는
△1961년 서울 출생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7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19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박사
△1992~1994년 맥킨지 경영컨설턴트
△1994~1996년 미국 일리노이대 어배너-섐페인 경영학과 교수
△1996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2017년~ 한국블루오션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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