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그로운(실험실 배양)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의 가장 큰 차별점은 대량생산 가능 여부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수백만 년, 길게는 수십억 년에 걸쳐 만들어지지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작은 결정이 1캐럿 크기로 자라는 데까지 불과 몇 주면 충분하다. 채굴에서 제조로 다이아몬드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화학적·광학적 기준으로 천연산과 100% 같은 다이아몬드가 등장하면서 글로벌 다이아몬드 가격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영국 드비어스가 판매하는 1캐럿짜리 라운드컷 천연 다이아몬드 반지(투명도VS1, 색상F 기준)는 3000만원(약 1만7500파운드) 정도다. 이에 비해 드비어스의 랩그로운 브랜드 ‘라이트박스’에서 내놓은 비슷한 조건의 다이아몬드는 340만원(약 2500달러)가량에 불과하다.
현재까지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존재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모양새다. 10일 글로벌 다이아몬드 거래소 IDEX에 따르면 글로벌 다이아몬드 가격지수는 지난해 3월부터 1년6개월째 수직 낙하 중이다. 작년 3월 158.39에서 이날 111.22로 내려왔다. 이 기간 29.7% 떨어졌다.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른 보석류 수요 감소와 함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공급량 증가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LVMH 등 글로벌 명품 기업들이 특히 주목하는 현상은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채굴 과정에서 환영오염이 발생하는 데다 노동력 착취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블러드(피 묻은)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시장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2015년 19억달러(약 2조5000억원)에서 올해 52억달러(약 6조9000억원), 2035년에는 149억달러(약 19조8000억원)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량은 광산 노후화 등으로 인해 매년 5%씩 감소하는 추세다. 이 자리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채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선 올해 들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이 열리고 있다. 더그레이스런던과 로이드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랜드그룹의 이월드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로이드는 지난달부터 한 달간 1캐럿짜리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반지를 100만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열었다. 천연 다이아몬드의 5분의 1도 안 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3주 만에 1000개가 판매됐다. 지난달 롯데백화점 동탄점 VIP 초청행사에서 ‘대박’을 터뜨린 더그레이스런던은 디자인 인력을 확충하고 입점 백화점 수를 늘리며 브랜드를 확장할 계획이다. 이월드 외에도 국내 최초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자체 생산에 성공한 KDT다이아몬드의 알로드, 트리플랩스의 어니스트서울 등의 브랜드가 시장에 속속 등장했다.
최근 들어서는 럭셔리 브랜드까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와 브라이틀링 등이 대표적이다.
LVMH 산하 투자회사 LVMH 럭셔리 벤처스는 지난해 7월 9000만달러(약 1200억원)를 이스라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스타트업 루식스에 투자했다.
■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무색의 투명한 광물로 만드는 ‘모조 다이아몬드’와 달리 천연 다이아몬드 ‘씨앗’(탄소 원소 등)을 실험실에서 배양(lab+grown)해 만들어낸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적·화학적·광학적 특성이 같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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