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재소환하고 있다.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 때문에 해빙 분위기로 가던 미·중 관계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본래 신형 주력 스마트폰을 처음 공개하는 방식은 정해져 있다. CES, IFA 같은 국제 가전전시회와 자체 대규모 행사를 통해서다. 대대적인 예고 광고도 곁들인다.
2020년 미국의 대중 제재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5세대(5G) 기반의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도 처음으로 중국 내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했다. 중국 정부는 화웨이폰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공공기관 내 애플 아이폰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에선 두려움 섞인 평가가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러몬도 장관의 방중에 맞춰 화웨이가 자체 칩을 넣은 스마트폰을 공개해 미국에 한 방 먹였다”며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핵심 기술 발전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의 7나노 공정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7나노 공정의 필수 장비로 알려진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대표적이다. EUV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때 쓰는 장비다. 그런데 EUV의 이전 단계 제품인 심자외선(DUV) 장비로도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달까지 미국의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던 DUV 장비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불똥은 한국으로 튈 수 있다.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에 유통 경로가 불분명한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가서다. 자칫 다음달로 끝나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조치 대상에서 한국이 빠질 수도 있다. 미국 의회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한국이 피해를 보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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