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3대 희소가스인 네온·크세논·크립톤의 경우 당초 주력 생산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였다. 하지만 양국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공급난이 커지자 국내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졌다.
2차전지용 양극재의 핵심소재인 전구체도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국내 2차전지 주력인 NCM(니켈·코발트·망간) 계열 및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계열 배터리 기준으로 전구체의 중국산 수입 의존도는 올해 1~7월 96.6%에 달했다. 음극재 원재료인 인조흑연(93.7%)을 비롯해 수산화리튬(80.4%), 산화코발트(69.5%) 등 다른 배터리 원재료도 대중 의존도가 높다. 특히 중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블랙홀’처럼 리튬과 코발트 등의 광물 자원을 싼값에 대거 빨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광물을 가공해 만드는 원재료(광물 화합물) 시장도 독점한다. 당장 중국에서 원재료 공급이 끊기면 배터리산업 생태계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자동차산업에서도 제동장치, 운전대, 에어백 등 부속부품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60% 안팎에 이른다.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집약적 부품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와이어링 하니스(전선뭉치)를 생산하는 중국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국내 자동차 업체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공장 가동을 중단한 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2010년대 초반 희토류 공급을 중단한 것처럼 노골적인 ‘자원 무기화’를 강행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중국 경제가 침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원재료 공급 중단은 중국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품목을 이용해 한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쓸 가능성은 있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 분석팀장은 “중국이 원자재 공급을 끊으면 국제사회와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도 “요소수처럼 일부 원자재의 공급 물량 조절을 통해 이른바 ‘길들이기’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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