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낯선 예술세계였지만, 아름다웠다. 거장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쇼팽 리사이틀은 그랬다. 플레트뇨프는 최근 쇼팽 피아노 음악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보여주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번 내한 리사이틀 프로그램도 쇼팽으로만 구성했다.
작품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음색이었다. 음색으로 놀라울 정도의 드라마를 만들었지만 간드러지지는 않았다. 담담했다. 그의 피아노가 유니크한 이유였다.
이날 플레트뇨프의 주법은 젊은 시절과 큰 차이가 났다. 날카로웠던 터치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의 흔적은 곱게 그을려 향기로 남았다. 더 이상 예리한 음악이 아니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글린카의 ‘종달새(The Lark)’와 모슈코프스키 에튀드 작품번호 72번 중 제6번에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두 작품 모두 그가 오랫동안 연주해온 작품이었지만, 지금의 플레트뇨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대했다. 특히 ‘종달새’는 과거보다 더 풍부한 상상력과 시성으로 피아노 예술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는 더 이상 ‘포르테’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말 필요한 부분에서만 툭 치듯 부드럽고 강한 소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음악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완급 조절은 여느 연주자보다 감각적이었다. 그의 신념이기도 한 “크게 치는 것은 단지 시끄러울 뿐”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작품의 뼈대가 되는 베이스도 강하게 연주하지 않았다. 대신 성부를 의도적으로 엇갈려 연주하며 그 효과를 냈다. 특히 쇼팽의 ‘판타지’에선 베이스의 울림이 오랫동안 지속되며 그렇게 많이 들었던 작품이 새롭게 들리기도 했다.
숨겨진 성부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쇼팽 작품 곳곳에서 보여주는 역설적인 뉘앙스도 오롯이 그만의 것이었다. ‘바르카롤’의 클라이막스와 ‘폴로네이즈 6번’에선 다이내믹을 반전시켜 원하는 효과를 얻었다. 센소리가 나와야 할 구간에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여린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설득력을 갖췄다. 물론 스케일이 큰 작품이나 기교적으로 까다로운 작품들에선 버거운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음악들 앞에서 그런 요소는 사소하게 들렸다.
2부 녹턴은 마치 판타지를 연주하는 것처럼 상상력이 풍부했고, 자유로웠다. 한마디로 ‘터치 마술’이었다. 때로는 즉흥적이기도 했다. 그의 녹턴은 지난 2월 도쿄 리사이틀에서 들었던 버전과 또 달랐다.
일단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기민했다. 연주 속도가 빨라서 기민한 게 아니라 다음 연주할 마디나 악구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해서였다. 그렇지 못한 경우엔 대체로 음표가 먼저 나타나고 표현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플레트뇨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별히 설계하지 않았던 부분인데도 그런 예측을 실행하면서 연주가 가능했다. 즉발적인 아이디어로 설득력을 갖춰나가는 과정이 놀라웠다. 계산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자는 빈틈이 없는 음악으로 우리를 감탄하게 하지만, 이렇게 즉흥 연주가 안겨주는 매력은 없다.
플레트뇨프의 쇼팽을 들으면서 얼마 전 한국 관객들에게 최고의 쇼팽을 안겨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떠올랐다. 우리 시대 최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지메르만은 모든 음악을 계획한 대로 연주한다. 이미 모든 것이 완성돼 있고, 그걸 하나로 통합해 들려준다. 반면 플레트뇨프는 순간순간의 표현이 강렬했다. 이 대목에 딱 맞는 소리가 있었다. 음반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표현들이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낯선 연주였지만, 아름다웠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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