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2급 이상 근로자들의 정년이 기존과 같은 만 61세로 유지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정년이 연장되지도 않았는데 임금만 삭감됐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퇴직자들도 모두 2급(전문위원) 근로자였다.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방법은 지난해 11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급 이상 근로자의 급여는 임금피크제 도입 4년 차 때부터 기존의 70% 수준으로 삭감됐다”며 “57세 이상이 되면 연령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판단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감액기간과 지급률이 이례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인국공이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의 창업, 구직 등을 지원하는 운영지침을 마련해 근로자의 불이익을 상쇄하려고 한 점도 판결에 반영했다.
인국공과 마찬가지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인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승소하긴 했지만, 모든 직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한 대형로펌 노동담당 변호사는 “고위직만 정년 연장을 안 한 데다 임금 삭감 폭도 작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며 “대법원까지 간다면 이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로선 불안감이 다소 잦아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5월 KB신용정보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소송 1심에서 패소하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졌지만, 8월 메리츠화재가 같은 쟁점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KB신용정보는 임금피크제 적용 첫해부터 연봉이 기존의 45~70%로 깎이는 구조가 문제가 됐다. 반면 메리츠화재의 경우 급여를 최대 50% 삭감하는 구조임에도 시간에 따라 단계별로 임금이 깎이도록 설계된 것이 승소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재판부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선 정년 연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며 “업무 강도를 반드시 경감해줄 법적 의무가 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임금 삭감 폭 등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와 기업의 보상 조치 내용이 승패를 좌우할 요인으로 꼽힌다.
박시온/김진성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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