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 입찰'은 옛말…LH 택지 공급도 스톱

입력 2023-09-11 17:39   수정 2023-09-19 16:20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지속으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하는 토지가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땅을 산 건설사와 디벨로퍼(개발업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낙찰받은 토지의 중도금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LH는 매각용 필지가 유찰되자 가격을 내리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수도권 외곽과 지방 분양시장이 좋지 않아 공급 계획을 취소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1조원 넘은 LH 공공택지 연체
11일 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 LH 택지지구 내 공동주택 용지를 분양받고 중도금과 잔금을 납부하지 못한 사업장은 46곳에 달한다. 연체 금액은 1조1336억원 규모다. 2021년(1308억원)과 비교하면 여덟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규모별로 따지면 경기 성남복정1 사업장의 연체액이 1413억원으로 가장 컸다. 경기 파주운정3(955억원)과 고양장항(522억원) 등도 500억원 이상 연체된 사업장으로 분류된다. 아예 계약금을 내지 못한 사업장도 12곳에 달한다.

공공택지는 LH가 아파트와 주상복합, 상가, 상업시설을 짓기 위해 조성하는 택지지구다. 일반적으로 LH가 아파트 용지 등을 조성하면 민간에서 낙찰받아 주택을 공급한다.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 용지는 민간이 공급하는 토지보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인허가 리스크가 작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설사 사이에선 이른바 ‘벌떼 입찰’이 벌어질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건설 경기 침체 속에 금리 인상과 PF 대출 축소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공사비 급등과 미분양 급증으로 건설사의 자금난이 가중됐다. 업계에서 정부에 공공주택용지 전매 허용을 요구하는 이유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천 영종에서 LH가 공공주택 용지 1순위 분양에 나섰지만,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택을 공급해도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 공공주택 용지를 반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택지 주변 상업용지 유찰 잇따라
택지가 아닌 상업시설 용지는 사정이 더 어렵다. 지난달 기준 선착순 계약이 가능한 LH 상업시설 용지는 300여 필지에 달한다. 모두 매각 과정에서 유찰이 반복되며 수의계약 형식으로 전환된 용지다. 용도별로는 공장과 지식산업센터 등이 들어서는 ‘산업유통시설’이 절반에 가깝다. 점포 겸용이 가능한 단독주택 용지와 근린생활시설, 상업용지도 주인을 찾고 있다.

문제는 유찰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아예 공급 계획이 취소된 상업시설 용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LH는 지난달 광주·전남에서 준공된 공공택지 내 상업시설 용지 분양에 나섰는데, 수의계약으로 전환해도 분양받겠다는 업체가 없었다. 결국 지난 4일 조건을 완화하기 위해 공급을 일시 중단했다. 광주선운2 공공주택지구에 있는 상업시설 용지와 자족시설 용지 역시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공급을 중단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LH는 공급 가격을 낮추고 무이자 할부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용지를 매입해야 할 개발업체는 “돈이 없어 못 산다”는 반응이다. 최근 낙찰받은 토지를 포기했다는 한 개발업체 대표는 “시장에 돈줄이 말랐다”고 말했다. PF 대출이 거의 불가능한 데다 대주단이 꾸려져도 이율이 높아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 상품인 상업시설은 주택보다도 금융비용 부담이 더 크다”며 “건물을 짓더라도 투자자와 임차인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LH도 용지 매각으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한 지역본부 관계자는 “업계 사정을 고려해 여러 인센티브 제공을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매각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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