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가 올해 1825조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학계에서 나왔다. 미적립부채는 현세대의 연금 지급을 위해 미래 세대가 세금이나 보험료로 부담해야 할 '빚'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이후 17년간 역대 정부에서는 공개하고 있지 않은 수치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오는 13일 공동 주최하는 연금개혁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이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2일 입수한 세미나 자료집에 따르면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국민연금의 '암묵적 부채'(미적립부채)를 추산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는 올해 1825조원에서 2050년 6106조원으로 증가, 2090년에는 4경4385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적립부채 비율은 올해 80.1%에서 2050년 109.1%로, 2090년에는 약 300%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미적립부채는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사망할 때까지 법적으로 받아야 하는 연금액의 현재가치에서 납부할 보험료의 현재가치와 국민연금 기금액을 뺀 수치다. 현재 연금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향후 70년가량 들어갈 연금 예상 지출액에서 기금(현재 약 900조원)을 빼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올해 미적립부채 추정치 1825조원을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수(2225만4964명, 5월 기준)으로 나누면, 1인당 8200만원가량 빚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 공식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미적립부채가 210조원이며, 이후 매년 30조원씩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이후 17년간 역대 정부 어느 곳도 미적립부채를 내놓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이 수치를 2007년 2차 연금개혁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정부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모두 정부가 책임지고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확정 부채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은 가입자들의 고용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에 정부가 사용자로서 지급해야 할 확정 부채지만, 일반 국민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이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자칫 미적립부채가 공개될 경우, 불안감을 조장해 연금 납부 저항을 높일 수 있는 데다 국가 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진보 진영 역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데 반대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적립부채 공개를 반대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달리 공무원·군인연금의 연금충당부채는 공개하고 있다. 2022년 기준 118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민연금 잠재부채까지 합치면 사실상 정부가 연금 지급으로 져야 할 부담이 3000조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적립부채는 결국 현세대를 위해 미래세대가 감당해야 할 빚이며, 장기 전망에 중요한 지표"라며 "정부가 책임 있는 연금개혁을 하려면 미적립부채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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