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상황 변화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최근 중국 경기 둔화를 계기로 미국의 전략적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생산성 저하,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성장세가 약해지다가 팬데믹 후에도 경기 회복 기대와는 달리 부채, 부동산 위기, 디플레이션, 청년실업 증상을 보이며 빠른 둔화세를 나타냈다. 유수 경제기관들은 중국 경제 성장률이 곧 4% 미만, 2030년에는 약 2%대로 급강하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국의 탄탄한 수요가 세계 경제의 회복을 이끌었지만 앞으로 다시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세계는 속수무책일 것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미국 정계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래 대중 강경파가 득세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의 반국제 자유질서 태도가 바뀔 때까지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과거 냉전체제에서 소련 진영은 세계 경제로부터 유리됐지만 지금의 중국은 글로벌 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 신냉전체제의 특징이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 경기의 위축은 물론 미국의 대중 투자 제한과 고율 관세 부과로 중국 시장을 잃고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를 자극하는 것에 불안해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중국 경기의 둔화는 그동안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주류였던 대중 연계(engagement)와 ‘지속적인 대화’를 강조하는 온건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정부 전략의 미세한 변화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유타주에서 중국의 경제 문제를 시한폭탄에 비유하며 난관에 부닥친 중국 지도자들이 “나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 데서 읽을 수 있다. 이른바 ‘토크빌의 패러독스’, 즉 경제사회적 여건의 악화로 민중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염두에 둔 대목이다. 미국 정부는 시진핑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고 지정학적 모험을 감행하지 않도록 냉전시대 미·소 군축 협상 등 접촉이 양국 간 충돌을 방지했듯이 중국과의 대화채널 구축에 비중을 뒀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달 중국 지도부와 만나 수차례에 걸쳐 국가안보와 경제통상적 이해를 구분 짓는 ‘실용적인 대화’를 강조했고 그 결과 미·중 간에 상무차관급 실무그룹과 수출통제정보교환기구 등 2개의 대화채널을 설치했다.
예상치 못한 중국 경제의 급속한 둔화를 놓고 미국 정부의 대중 전략 실행이 수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에도 베트남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할 의도가 없으며 중국과의 솔직담백한 관계를 원한다”고 했다.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과의 회동 기대도 내비쳤다. 앞으로 미·중 갈등의 향방은 양측의 협상 의지, 아시아지역 내 공급망 재편, 다극체제를 구축 중인 미국의 새 전략지형에 대한 자신감, 이에 맞선 중국의 경제위기 관리 및 기술 독립에 대한 자신감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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