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이나 지리산 피아골 어디에도 늑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고, 그 많던 호랑이를 잡는 포수도 사라진 메마른 나라에서 시 쓰기의 보람을 생각한 것은 내가 한심한 탓이다. 시를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기이한 동물 보듯 쳐다보고, 아직 시를 써요! 하고 가엾게 여긴다.
반세기 전 시 쓰는 청년을 비웃은 이마가 반듯한 숙명여대 작곡과 여학생이여, 지금 이 땅에는 수만 명의 시인이 북적거리고 해마다 새로운 시인들이 쏟아진다오. 이런 놀라운 사태가 일어나는 까닭은 ‘시를 쓰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편의 시’가 나오지 않은 탓이다. 그 ‘단 한 편의 시’가 나온다면 이 땅에 더는 시인도, 시도 필요가 없을 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란 영화 제목을 보면서 기발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암담한 영화에서 ‘지푸라기’는 기어코 움켜쥐어야 할 희망과 구원의 수단이다. 오죽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서 제 궁지를 털어내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엿보인다. 변변한 기술도, 유산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한 채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 모루와 화덕에 관한 시 한 편을 적는 대책 없이 염결한 영혼들이야말로 ‘지푸라기’를 잡고 사는 궁핍한 짐승들이 아닌가!
“나는 낫과 녹로를 다루는 기술과/ 볏짚을 털고 염료를 우려내는 기술과/ 풀덫 놓은 자리를 발견하는 기술과/ 점치는 기술과/ 술 빚는 기술과/ 노래하는 기술을/ 상속받지 못했다”(윤택수, ‘세 가지 소원’)고 노래하는 시인이라니! 그가 열거한 기술 중 하나라도 가졌다면 굶지는 않으련만!
이깔나무숲 사이로 사라져가는 금강산 포수 이야기를 풀어내고, 가슴 저린 오얏 향기의 시절을 기리는 노래를 적은 유고시집을 읽은 건 10년 전쯤이다. 내가 읽은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는 낯선 상상력으로 빚은 무섭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시편이 그득했다. 나는 겨우 41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뜬 그의 이름 석 자와 생몰연대를 중얼거린다. 윤택수, 1961년 출생, 2002년 9월 사망. 그는 지방 국립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중학교 국어교사, 출판사 편집장, 울산 공단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같은 직업을 넘나들며 시를 썼다. 생전에 등단이라는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시 110편만 덩그러니 남긴 채 떠난다.
장차 나라에 호젓한 시절이 오면 아들 하나를 낳아 반듯한 인격을 갖춘 아들로 키워 공중목욕탕에 함께 가서 등을 맡겨 때를 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남기지 못한 채 죽었다. 그는 친구 어머니의 삼우제 날 밤에 친구 집 윗방에 모인 오랜 벗들과 화투도 치지 않고, 고깃점에 두부 썰어 찌개 끓이며 청솔회 곗돈을 융통해 달아난 놈의 흔적 없는 행적이나 씨부렁거렸다.
그는 한국 도스토옙스키협회, 민요연구회, 녹색당 산하 탐조회, 화요문학회, 전교조, 프로야구기록동호회, 세계습지조약홍보회, 이혼을 도와주는 모임에서 활동하려고 했다. 금강산 가는 협궤철도를 타려던 거창한 꿈은커녕 “내 고장의 해변에서 작은 여인과 함께 사는 것”이라던 작은 꿈마저 어긋난다. 방랑과 번뇌의 아들이 감당하는 삶은 늘 서릿발 솟은 대지에 내리는 쇠기러기 벗은 발처럼 시리기만 했던 것이다.
홍적세 초중기의 빙하기에 인류의 99%가 멸종한 것은 90만 년 전 일이라고 한다. 지구의 번식 가능 인구는 고작 1280명! 이런 위기가 닥치고 11만7000년이 흐른 뒤 인류의 조상인 호미닌 종이 나타난다. 지구에 바글거리는 70억 넘는 인류는 그 호미닌 종과 똑같은 유전자와 염기서열을 가진 후손들이다.
오늘 아침 도착한 90만 번째 가을에 나는 아내가 끓인 이밥과 아욱국, 미역줄기무침과 구운 갈치 토막 살을 발라 먹고 책이나 쉬엄쉬엄 읽으며 아름답고 쓸모없는 시를 끼적인다. 누가 말해 다오, 나는 무위도식하는가? 그렇다면 누가 나의 뺨을 철썩 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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