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중’이 아닌 유물과 미술품의 95%는 지하 수장고에 꼭꼭 숨겨져 있다. 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선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일반인은 물론 박물관 학예사, 미술관 큐레이터에게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수장고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세계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시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공유로, 예술 애호가들의 취향이 수집에서 활용으로 바뀌고 있는 데다 보안과 전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의 ‘데포’,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등이 ‘개방형 수장고’로 유명하다.
2028년 서울에도 개방형 수장고가 문을 열 전망이다. 서울시는 ‘펀 시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리풀 미술관형 수장고’ 계획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설계 공모에 나선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시립 미술관 보이만스 판뵈닝언이 2021년 개관한 ‘데포’가 모델이다. 1849년 개관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은 중세 회화는 물론 플랑드르 화가의 작품, 세잔, 고흐, 칸딘스키, 달리 등 미술사를 관통하는 15만 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170년이 넘는 역사 속 막대한 기부 작품이 쌓이면서다. 미술관이 보유한 회화, 조각, 도자 등의 작품 총 15만여 점 중 본관에는 불과 8%만 전시할 수 있었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이 15년여의 고민을 거쳐 2021년 세계 최대 규모의 개방형 수장고 데포를 개관한 이유다.
데포는 문자 그대로 공간(창고)이자 미술품과 관객, 예술 그 자체를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라는 게 미술관 측 설명이다. 데포는 작년 한 해에만 26만 명이 방문하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작년 10월 유럽 출장길에 데포를 방문한 뒤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국내 건축가 중에선 유현준 홍익대 교수와 YG 사옥을 설계한 임재용, 강남부띠크모나코를 설계한 조민석 건축가가 참여한다. 최경주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보이는 수장고를 도시경쟁력을 상징하는 창의적 건축이자, 서울 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장고 안의 콘텐츠에도 공들일 예정이다. 학예사와 연구자만 접근할 수 있었던 시 산하 박물관과 미술관 네 곳(역사박물관 시립미술관 공예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10만 점을 다양한 동선으로 전시할 계획이다.
정지희 서울시 박물관기반확충팀장은 “서리풀 수장고는 미술품의 보존 처리 과정을 100% 일반에 공개하는 국내 최초 사례가 될 것”이라며 “예술품 보존과학자를 꿈꾸는 예술학도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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