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내린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사연이 알려진 뒤 시민들이 가해 학부모들의 신상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캐내고 있다. 이 가운데 사건과 관계없는 무고한 피해자들 역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사실상 테러에 가까운 비난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마녀사냥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갈비집을 운영하는 자신의 삼촌이 가해 학부모로 몰려 욕설과 별점 테러를 당했다는 A씨는 지난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선생님 조문 다녀오면서 참 가슴이 아팠고 청원에도 동의하며 지지하고 있지만, 카더라(소문)를 통한 마녀사냥만은 멈춰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삼촌의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찍어 올리며 "자녀는 이미 성인이고, 해당 초등학교에 다닌 적도 없다. 근처에 거주한 적도 없다"고 했다.
또 이날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가 가해 학부모의 영업장으로 잘못 알려져 피해를 받고 있다는 B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잘못된 정보는 한 가정을 망친다. 이 글을 제발 공유해달라"며 "평점과 오류로 많은 피해를 받고 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신다면 별점 5점과 오류라고 확실한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드리겠다"고 했다.
대전 사건 가해 학부모가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미용실과 같은 상호를 쓰는 또 다른 미용실도 고통을 호소했다. 이 미용실은 온라인 공지를 통해 "저희 가게는 모 초등 교사와 관련이 없는 곳이다. 저희 가게는 대전 유성구가 아닌 동구에 있으니 제발 주소를 확인해달라"며 "무분별한 전화 테러와 악의적인 댓글은 자제 부탁드린다"고 했다.
대전의 한 음악학원 원장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르는 번호로 수차례 전화가 오기 시작하면서 저격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며 "무고한 사람을 마녀사냥 해 또 피해자를 만들려고 이러는 거냐"고 했다.
앞서 대전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40대 교사 A 씨는 지난 5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지난 7일 숨졌다. 올해로 24년 차 교사인 A씨는 2019년 대전 유성구 소재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고 무고성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아동학대 고소는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이후 사건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가해 학부모들 신상털이에 나서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또 실제 가해 학부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업장에는 '포스트잇 테러', '케첩 테러' 등이 이뤄지면서 사적 제재 논란도 커지고 있다. 사법 기관이 아닌 개인이나 집단이 형벌을 가하는 게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이런 갑론을박은 최근 흉악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보다 더 뜨겁게 벌어지는 분위기다.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지난 6월 5~9일 5000명을 대상으로 사적 제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은 50.1%, 반대는 33.1%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가 혹은 법이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개인의 형벌이 필요하다' 37.6%, '국가와 법의 제재와는 별도로 개인의 형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12.5%로 찬성이 50.1%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이 형벌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대 의견은 33.1%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 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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