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여 4명의 사상자를 낸 조선(33)이 재판에서 피해자들을 살해하려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13일 오전 11시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조승우 방윤섭 김현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조선의 법률 대리인은 피해자들에 대한 특수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죽일 생각은 아니었고 상해를 가할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당일 및 직전 불상의 남성들이 자신을 미행한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휴대폰이 해킹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거나 컴퓨터를 부수는 행동을 했다"며 "실제로 자기 집을 찾아오는 남성들의 모습을 확인했고,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오는 것이 하는가 아닌 피해망상을 겪었다"며 "현실과 망상의 구분이 어려웠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유일한 수단이 타인에 대한 공격밖에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변호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자신의 도움을 청할만한 것이 없어서 스토킹 집단을 향한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우발적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이고, 그 외에는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조선의 변호인은 "당시 피고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면서 "피고인은 경찰 4차 조사 당시 환청이나 망상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털어놨으나, 수사관이 이를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조사자가 원하는 대로 답변을 한 측면이 있다. 그런 부분을 참작해 주시길 바란다"라고도 당부했다.
이날 재판에서 갈색 수의를 입은 조선은 흰색 마스크를 눈 바로 아래까지 올려 써 얼굴을 최대한 가린 채 법정에 들어섰다. 검찰이 공소장을 낭독할 때는 갑자기 마스크를 내리고 얼굴 전체를 드러냈다가도,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얼굴을 감싸거나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범행 이후 조선이 경찰에 현행범 체포될 당시 "X 같아서 죽였다"며 웃음을 짓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목격담이 나온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날 재판에서는 조선의 범행 당시 장면이 담긴 영상도 검찰 측 증거로 제출돼 재생될 예정이었다. 영상 재생에 앞서 재판부는 "생각보다 잔인하기 때문에 불편하신 분은 지금 나가시는 것을 권한다"고 당부했다. 영상 재생 전 조선은 머리를 양손으로 쥐어 싸매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깊은 한숨을 내쉬는 행동을 반복했다. 변호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다시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해당 영상은 장비의 문제로 재생되진 않았다.
앞서 조선은 지난달 21일 오후 2시 7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번화가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약 18차례 찔러 살해한 뒤, 골목 안쪽에서 30대 남성 3명에게 잇따라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 등)로 구속기소 됐다. 또 2분간 골목길에서 4명의 남성에게 흉기를 휘둘렀는데, 그 횟수는 40여회에 달했다.
범행 당일 인천 서구에서 서울 금천구까지 택시를 무임승차하고, 범행 직전인 오후 1시 59분께 금천구의 한 마트에서 흉기 2개를 훔친 뒤 신림동까지 재차 택시를 무임 승차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조선이 잇따른 실패를 겪고 은둔생활을 하던 중 몰입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글로 고소당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했다. 조선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 전 '살해 방법', '급소', '사람 죽이는 칼 종류' 등을 검색했다고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다음 재판은 10월 18일 오후 3시께 열린다. 재판부는 피해자 4명 등을 상대로 증인 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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