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완 한국자살예방협회장 "정신과 치료 문턱 낮춰야 건강한 사회 될 수 있죠"

입력 2023-09-13 19:03   수정 2023-09-14 00:36

“의사로서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저는 정신과 의사로서 공동체를 돕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기선완 한국자살예방협회장(사진)은 사회의 아픔을 치료하는 의사다. 중앙정신보건복지사업지원단 단장도 겸하고 있는 그는 한국중독정신의학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에서 활동하며 알코올 의존증, 마약, 자살 같은 사회적 정신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사회적 정신의학’에 몸담게 된 이유는 어릴 적부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한 기 협회장은 당시 학교에 많았던 조각가, 회화, 시인 선생님들 밑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특히 박희진 시인을 졸업 후에도 오랜 시간 은사로 모시며 배웠다”며 “사람과 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라고 했다.

기 협회장은 의대 졸업 후 알코올 의존증을 포함한 정신질환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그중 한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환자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남성이었다. 가족을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그는 기 협회장을 만난 뒤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안심했지만, 그 환자는 불행하게도 3년 후 삼풍백화점 3주기를 맞은 날에 아내와 딸이 묻혀 있는 무덤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 협회장은 정신질환 환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일관된 치료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회성 치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잠시 사라질 수 있지만 재발 확률이 높고 사회 적응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치료 체계는 재활, 복지, 행정, 의료가 모두 따로 노는 분절화된 시스템”이라고 꼬집고는 “병이 재발하지 않고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으로 더불어 살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관된 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코올 중독 등 중증 정신질환 환자를 바라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기 협회장은 “대한민국 성인의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27%가 넘는다”며 “4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정신과적 문제를 경험할 정도로 정신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장애 환자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어져야 정신과를 향한 문턱이 낮아지고 편안하게 치료받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의학계에 몸담아온 그는 가장 뿌듯한 순간으로 ‘그가 만든 알코올중독 치료 환자 모임이 10주년을 맞은 순간’을 꼽았다. 그가 상담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을 모아 자신의 고충과 회복 과정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던 기 협회장은 “그 모임이 10년이나 이어져 환자와 환자 가족 50명이 건강한 모습으로 모인 순간 정말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정신과 치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신건강영화제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는 “시민들이 모여 워크숍, 토론을 하며 아주 자유롭고 활발한 문화 행사로 정신질환에 관해 논의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정신건강 문제를 문화예술 활동과 연결해 인식을 개선하고 정신건강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구교범 기자/사진=임대철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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