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여러 단계에 걸쳐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 와인의 매력에 빠지면 선호하는 와인 품종이 생긴다. 그다음으론 유난히 마음이 가는 생산 국가와 지역, 특정 와이너리를 탐구하게 된다. 이후엔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과의 페어링이 좋은 미식을 찾는다. 와인의 매력에 빠져든 이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와인 글라스다.
와인 글라스는 일종의 마침표다. 와인 본연의 맛이 하나의 문장이라면 좋은 와인 글라스는 그 문장을 마무리 짓는다. 같은 와인이라도 어떤 잔에 담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혀에는 단맛, 쓴맛, 신맛을 느끼는 부위가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와인 글라스 모양에 따라 와인이 처음 혀와 만나는 순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레드와인과 샴페인, 포트와인과 화이트와인을 담는 글라스 모양이 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와인 글라스의 본질은 디자인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잘토는 “와인 본연의 향을 느낄 수 있고 맛을 더 풍부하게 느끼는 것이 와인 글라스가 제일 먼저 추구해야 할 본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적으로도 완벽한 자신의 글라스를 두고 디자인보다 기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의아하게 느껴지던 찰나,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떤 형태의 곡선을 가진 글라스인지에 따라 각각의 와인 맛 표현이 달라지다 보니 곡선의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는 것뿐입니다.”
조세핀 글라스는 총 4종으로 이뤄져 있다. 다른 브랜드처럼 잔의 종류를 여러 개로 나누지 않고 간단하게 구성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샴페인용 잔을 제외하곤 글라스의 볼(둥근 부분)이 림(가장자리)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좁아지다가 다시 살짝 넓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잔의 두께는 림 부분이 1㎜로 가장 두껍고 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잘토는 “많은 브랜드가 레드와인용 잔만 네 개, 화이트와인용 잔만 네 개씩 만드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와인마다 각각의 잔을 만들 수는 없는 터. 섬세한 디자인을 통해 와인 본연의 맛과 향을 잘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심플한 컬렉션에 담겼다.
조세핀 글라스의 볼 아래 하단부는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샴페인 잔은 글라스의 볼에서 스템(다리 부분)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뾰족해야 샴페인의 기포가 아래 쪽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잔 안에서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이래야 글라스 내부에서 공기의 흐름이 생기기 때문이다. 잘토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공기”라고 말했다. 그는 “와인 볼을 더 둥글게 만들어 공기가 글라스 안에서 오래 머물며 와인 풍미를 더욱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와이너리를 처음 방문했던 걸 잊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분들의 거친 손을 보고 흔히 접하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알게 됐고, 이 덕분에 와인을 제조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갖춰 글라스를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잘토는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유리 공장을 방문한다. 와인 글라스를 만들기 위한 유리 공을 하나하나 직접 선별한다. 조세핀은 90g 기준 20% 이상의 오차가 발생하는 유리공은 모두 불량으로 판단한다. 제조 당일의 날씨도 중요하다. 그는 “온도나 습도가 급격히 변하는 날엔 글라스를 제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세한 차이가 글라스의 내구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 글라스를 만드는 장인을 선별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유리 공장에 근무하는 인원은 1500명이 넘지만 유리 글라스를 직접 입으로 불어 제작할 수 있는 장인은 20명 남짓. 그는 “각종 유리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와인 글라스를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와인 글라스 장인을 선별하면 직접 최소 두세 달간 트레이닝을 거친다. 예전 장인들의 기술 전수 방식 그대로다.
잘토가 추구하는 건 ‘다작’보단 ‘걸작’이다. 좋은 와인을 완성하는 데 있어 와인 글라스의 중요성을 아는 그가 여러 차례 강조한 단어가 바로 ‘예의’다. “좋은 와인을 형편없는 잔에 따른다는 것은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