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스캔들로 정부 각료와 국회의원들을 셀 수 없이 감옥으로 보냈고, 말라리아와 황열병은 물론 추락과 각종 사고로 2만7500여 명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한 채 완공된 파나마 운하. 놀랍게도 단지 80여㎞의 운하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우회해야 했던 2만2500㎞의 긴 항로를 단 9500㎞로 단축했다. 이 신박한 토목건축물은 세계인의 관심사였고, 공사 과정에 엮인 몇 가지 정치·경제적 스캔들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보다 조금 이른 1850년대 미국 서부에서 많은 사금이 발견되면서 이른바 골드러시 현상이 있었다. 금을 캘 때 쓸 모자로 통기성이 좋고 내구성도 뛰어난 이 모자가 이미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 당시에는 파나마가 남미 제품의 미국 수출 통로였고 일확천금을 노리며 미 서부로 향했던 남미의 노동자들도 파나마를 지나며 이 모자를 들고 갔다. 이미 파나마에서 온 모자로 알음알음 알려지던 중이었다. 시간이 흘러 1907년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국가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파나마 운하 공사 현장을 방문하게 되는데, 방문 당시 쓰고 있던 멋진 하얀 모자가 전 세계 뉴스로 타전됐다. 파나마에서 만들어지지도 않았지만 전 인류에게 ‘파나마 모자’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파나마 모자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모자의 형태나 세부적인 디자인의 차이가 아닌, 어떤 소재로 어떤 공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에콰도르의 꼼꼼한 기술자들이 원료 잎을 실처럼 가늘게 손수 찢고 촘촘하게 짜 2.5㎠당 1200개의 섬유를 엮어 흡사 모시처럼 섬세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이 모자의 제조 방법은 2012년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으니 형태가 비슷한 저렴한 다른 모자들과 파나마 모자를 구별할 때는 가격뿐만 아니라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를 꼭 확인해보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파나마 모자 최고 멋쟁이로 1940년대 초반 태어난 두 명을 꼽고 싶다. 영정 사진에서 싱긋한 미소와 함께 파나마 모자를 쓰고 계시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롤링스톤스의 간판 믹 재거다.
이제 슬슬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마룬파이브의 ‘무브스 라이크 재거(Moves like Jagger)’의 휘파람 전주가 흘러나올 때, 어깨를 들썩거리며 파나마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는 건 어떨까. 이보다 더 이상 근사할 수 없었던 믹 재거의 몸짓으로, 아버지의 싱긋한 미소를 떠올리며 파나마 모자를 써볼 테다. 함께 써 보실라우? 레츠 웨어 라이크 재거(Let’s wear like Jagger!)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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