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기업대출의 중소기업 지원 역할과 수익성의 시너지를 강조했다. 단순히 다른 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기업에 제시해 확보한 대출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 들어 은행권이 앞다퉈 기업대출 늘리기에 나선 가운데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 하락과 부실 대출 증가 등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40여 년 은행원 생활 대부분을 일선 영업 현장에서 보낸 ‘영업통’인 함 회장이 수익성 확보를 주문한 것은 최근 기업대출 시장에서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이 우려된다는 판단에서다.
고금리 여파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하자 은행권은 기업대출 자산을 늘리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낮은 금리를 앞세워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영업을 확대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8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47조4893억원으로 전달보다 8조5974억원 증가했다. 올 1월 기업대출 잔액(707조6043억원)과 비교하면 8개월 만에 4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증가폭도 3, 4월 4조원대에서 7월엔 6조원대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달엔 8조원대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 간 출혈 경쟁도 펼쳐지고 있다. 신용도가 탄탄한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 계열사에는 은행들이 실적을 내기 위해 다른 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써내서라도 대출 자산을 확보하려 하고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은 “최근 대기업들이 0.01%포인트라도 낮은 금리를 제시한 은행에서 대출받고 있어 은행의 기업대출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에 비해 은행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중소기업 대출금리도 내리는 추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 5~7월 중소기업에 내준 신용대출 금리는 연 5.49~6.57%로 6개월 전(연 5.73~7.03%)에 비해 금리 상·하단이 0.24~0.46%포인트 떨어졌다.
은행들은 직원 퇴직연금 및 법인 신용카드 가입이나 외환거래 등 부수거래를 통해 기업대출의 수익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일부에선 기업대출 담당자들에게 대출 기업을 대상으로 은행이 수수료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저축성 보험 판매 목표치까지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한 기업대출 경쟁이 은행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금리에 경기 부진 여파로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여신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집계 결과 올 2분기 기업여신 신규 부실은 2조8000억원으로 전분기(1조9000억원)에 비해 9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2분기 가계여신 신규 부실은 1조원으로 전분기와 비슷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계기업의 부실화 가능성이 큰 만큼 은행 건전성이 예상보다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