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글로벌 자원전쟁 판도가 달라졌다
1911년 영국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해군함정의 연료를 웨일스산 석탄에서 페르시아산 석유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반대여론이 빗발쳤다. 자국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석탄을 버리고 굳이 먼 타국에서 석유를 수송해와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석유로 대체한 전략적 이점은 명확했다. 영국의 함정들은 더 멀리 더 빠르게 운항했다. 이후 영국은 1·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됐다. 처칠은 훗날 “모험을 무릅쓰고 얻은 상은 지배력(패권)이었다”고 회고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 대니얼 예긴의 저서 ‘황금의 샘(the prize)’에 나온 일화다.
국제싱크탱크 에너지전환위원회(ETC)는 2030년까지 구리와 니켈은 50~70%, 코발트와 네오디뮴은 150%씩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흑연과 리튬의 수요는 6~7배 급증할 전망이다. 알루미늄, 강철 수요까지 더할 경우 2030년 광물 수요는 65억t을 넘어선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서방 주요국들의 전략은 △중국 공급망 탈피 △자국내(역내) 생산역량 확대 △우방국 중심 공급망 구축 △제3국과의 협력 강화 △희귀광물 대체 기술 개발 등이다. 이를 위해 핵심 광물을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 구리를 핵심 물질에 포함했고, 최근 몇년 새 니켈·망간·란타넘·프라세오디뮴 등 배터리 관련 광물들이 미 지질조사국 핵심 광물 목록에 대거 추가됐다.
주요국들의 광물 협력에 불씨를 댕긴 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다. IRA는 청정 기술 분야에 들어가는 광물 자원을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조달하는 경우에만 세금공제(보조금) 혜택을 주겠다고 규정했다. 일본·EU·인도네시아 등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국가들이 반발했고,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이들을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끌어들였다.
미국은 또 올해 3월 일본과 FTA에 준하는 ‘핵심 광물 무역협정’을 맺었고, 다른 국가들과도 비슷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더 넓은 범위의 동맹 체제도 출범시켰다. 호주·인도·캐나다·한국·일본 등 13개국과 “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글로벌 민·관투자를 촉진하겠다”며 핵심광물 안보파트너십(MSP)을 결성했다. 주요 7개국(G7)은 특정 국가 수입 비중이 높은 핵심 광물에 대해 ‘수입 비중 목표치’를 구체화해 공급망 다각화에 협력하기로 했다.
주요국들의 각자도생 전략도 잇따르고 있다. 유럽은 올해부터 20억유로 규모의 ‘유럽 원자재기금’을 집행해 광물 수급 안정화에 나섰다. 또 2030년까지 제3국에서 수입하는 핵심 원자재 비중을 역내 소비량의 65% 밑으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달 아프리카 순방 결과에 따라 잠비아·콩고민주공화국·나미비아 등 3개국과 광물 공동탐사 협정을 체결했고, 영국까지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커스틴 힐만 주미국캐나다대사는 “주요국들이 광물 분야에서 중요한 협정을 잇달아 맺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경쟁자이기도 하다”며 “어느 정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한 협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어떤 협력 틀이 성공할지 누구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콜로라도 광업대학교 산하 페인 공공정책연구소는 “중국은 수십 년에 걸쳐 해외 광산 탐사, 채굴, 제련 등 공급사슬 전반을 만들어왔다”며 “MSP 같은 외교적 이니셔티브만으로는 10년 뒤에도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셉 마즈쿠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에너지안보 책임자는 “이제 막 전쟁터에 뛰어든 서방은 광물 매장국들과의 정치·경제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로마는 하루 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YT는 “과거엔 산유국들이 석유에 대한 영향력으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지만, 신종 전략 광물의 통제권은 아직 사실상 무주공산(無主空山)이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주요 광물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도 실상은 대부분 해외 광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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