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5일 러시아 전투기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등 본격적인 '무기 투어'에 나섰다. 북·러 정상회담 후 첫 일정으로 러시아제 무기를 둘러보는 모습을 연출해 이번 방러의 목적이 양국 간 군사협력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날 스푸트니크 통신 등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시의 전투기 생산 공장인 '유리 가가린' 공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김정은은 4.5세대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35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수호이-57, 신형 여객기 수호이 수퍼젯-100의 최종 조립 공정을 지켜봤다. 또 수호이-35 시험 비행도 참관했다. 만투로프 장관은 "북한과 항공기 생산을 비롯한 산업 분야에서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는 특히 양국의 기술 주권 달성 과제를 위해 아주 시의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외교가에선 러시아가 당장 전투기 완제품을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가용자원이 부족한 상황인 데다 전투기 제공시 국제사회의 감시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 전투기 부품과 항공유 등을 제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기술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최신 전투기는 4세대 전투기인 미그29인데 노후화된 데다 부품 조달에도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정은은 전용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해 16일께 도착할 예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현지에서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만나 태평양함대 사령부, 극동연방대학교 등을 둘러볼 전망이다.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핵잠수함을 시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과 미국은 이날 제4차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열고 북한의 핵위협에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또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대해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에서 장호진 차관과 신범철 국방부 차관, 미국 측에서 젠킨스 차관과 사샤 베이커 국방부 정책차관대행이 수석대표로 참여했다. EDSCG 회의가 한국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한미가) 러시아는 비확산 체제 창설의 당사자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 일원으로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한미 간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면서 분명한 대가가 따르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도 "러시아와 북한의 정치 협력 증대를 규탄한다"며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불법 핵 프로그램을 촉진하고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양측 차관들은 기자간담회 후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을 방문해 북한의 무력 도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서 러시아로 무기를 운송하는 데 관여한 러시아인을 비롯해 동맹국 기업까지 예외 없이 150여 곳의 개인과 단체·기업에 대해 대규모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미 재무부는 핀란드 물류기업 시베리카·루미노에 대해 “러시아에 근거를 둔 최종 사용자에게 외국 전자기기를 배송하는 데 특화된 네트워크”라고 제재 사유를 밝혔다. 러시아와 거래한 제3국 기업·개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2차 제재'를 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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