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맛에 맞는 연예인들을 '개념 연예인'으로 부르거나, 그 반대의 연예인은 '개념 없는 연예인'으로 부르며 비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가 시작된 지난달 24일, 자우림 김윤아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려를 표하면서 불거졌다. 김윤아는 'RIP'(Rest in peace) 지구(地球)'라고 적힌 사진을 올리면서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며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뒤늦게 소속사가 정치적 입장을 피력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김윤아의 이런 글은 정치 쟁점화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김윤아의 이런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급기야 지난 12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돌연 공개 석상에서 김윤아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에 어떤 밴드 멤버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후 '지옥이 생각난다'고 해 개념 연예인이라고 하는데, 기가 막힐 일"이라며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여당 대표의 연예인 비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 김규리(개명 전 김민선)가 과거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논란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것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겠다'며 개념 연예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그게 무슨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막힌 일을 목도한 바 있었다"고 했다.
바통은 같은 여당 지도부인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이 이어받았다. 장 최고위원은 다음 날인 13일 아침 라디오에서 "연예인이 무슨 벼슬이라고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아무런 책임도 안 져야 하나. 그런 시대는 끝났다"며 "김윤아든 누구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만 공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당 지도부가 이처럼 공격적인 언사를 보이자, 대중들도 연예인을 놓고 벌어진 이념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온라인상에서 친여 성향 네티즌들은 김 대표의 김윤아 비판 발언을 보도한 기사 댓글창에 우르르 몰려가 김윤아에게 돌을 던져댔다. "개념 있는 척하려다가 오지게 당하네", "선동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우림은 좌우림", "감성팔이 그만하라" 등의 반응이었다.
그러자 친야 성향 네티즌들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5000만원을 쾌척한 배우 이영애를 여론 재판대에 올렸다. 친야 성향 네티즌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서는 이영애의 후원금 보도에 "저 쪽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사 인식까지 참 안타깝다"고 덧붙인 글이 올라왔다. 이에 다른 회원들은 "이제는 금자를 보내줘야겠다",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옛말이 딱 맞다" 등 비판에 동조했다. "김윤아는 여러가지 제한을 받을 텐데, 우파 이영애는 불이익을 받을 일이 있겠냐"고 주장한 이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민 통합을 이끌어야 할 여당이 이념 전쟁의 전선만 확대해 갈등을 부추긴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지도부의 이번 언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한경닷컴에 "여당 대표가 굳이 연예인들하고 나서서 싸우는 것을 국민께서 바람직하지 않게 보시지 않을 것 같다"며 "김윤아의 발언이 비논리적이었다는 건 국민 스스로 판단할 텐데,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사안은 국민 판단에 놔두면 된다"고 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연예인이 최대한 정치색을 안 드러내는 게 좋듯이 정치인 역시 연예인을 공개 저격하는 건, 마치 좌표 찍기처럼 국민께서 보실 수도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3일 페이스북에서 "대중 연예인의 발언이 정치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정치인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반면 정치인도 충분히 연예인을 비판할 수 있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예인의 영향이 크니까 일부 정치인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연예인을 비판할 수도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대표가 나설 급은 아니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이념 전쟁'에 여당 지도부가 충실하다가 빚어진 논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이 이념을 강조하면서 중앙부처도 그렇고, 각 장관도 그렇고, 당도 그렇고, 경쟁적으로 관련 이슈를 발굴해서 쟁점화하는 과정에서 금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며 "전선을 무한 확대해서 대한민국 전체가 이념 지뢰밭으로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엄 소장은 이어 "연예인은 문화예술 영역으로 어느 분야보다도 사상, 양심,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그게 시장경제원리이기도 하고 헌법 가치"라며 "이번에는 (여당 지도부가) 너무 심하게 이념 몰이에 앞장선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당대표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서 또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서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