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이복진 한국제지연합회장은 ‘환경 파괴 주범’이라는 제지산업이 뒤집어쓴 오명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종이의 원료인 펄프는 정해진 조림지에서 키운 나무로만 만든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에서 자란 나무를 베지 않는다.
또, 국내외 제지회사들은 벌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나무를 조림지에 심고 있다. 이 회장은 “종이 사용량과 생산량이 늘면서 실질적인 산림 면적도 세계적으로 많이 늘어났다”며 “오래된 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 효과가 떨어져서 그런 나무를 사용하고 그 자리에 새로 심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에 눈감은 채,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종이를 덜 사용하는 것이 산림을 보호하는 행동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회장은 “제지회사들이 국내에 경작하는 산림지가 약 9000㏊,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등에 추가로 보유한 게 약 7만4000㏊로 총 8만3000㏊를 경작한다”며 “여의도 면적에 약 290배 규모”라고 강조했다.
제지연합회는 1952년 국내 제지사들이 모여 출범했다. 산림 자원이 부족한데도 국내 제지사들의 생산량은 지난해 1125만톤에 달한다. 세계 7위 수준의 ‘제지 강국’이다. 연합회는 제지가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글로벌 이슈에 공동 대응하고, 종이 자원 관련 대국민 인식개선을 나서는데 구심점 역할을 한다. 지난 2월 제지연합회장에 오른 이 회장의 취임 일성도 ‘인식 개선’이다. 이 회장은 제지산업의 친환경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연합회는 지난 6월 종이의날을 기념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종이가 아마존 등 원시림 나무로 생산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86.5%에 달했다. 이 회장은 “벼농사를 지을 때 벼를 벤다고 자연 훼손이라고 하지 않지 않나”라며 “산림 경작도 윤벌 개념이고, 동남아에선 6~8년 자라면 쓸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종이는 다 재활용할 수 있습니까?
“85%가 재활용 된다고 말씀 드렸는데 나머지 15%는 기록물로 남기는 종이이거나 분리 배출이 안 돼서 일반 쓰레기와 섞여서 폐기물 처리되는 것입니다. 종이는 어느정도 내수성을 갖고 있어도 물에 잘 풀어집니다. 재활용률을 더 높이려면 핵심은 분리 배출입니다. 햇빛과 땅만 있으면 나무는 어디서든지 자랄 수 있습니다. 무한 재생산 가능한 순환자원입니다. 국산 종이 빨대는 폴리에틸렌 코팅을 하지 않아 친환경적이며, 분리수거가 잘 이뤄지면 100%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 됩니다.”
▷플라스틱 업계에서도 친환경을 주장합니다. 제지업계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주장처럼 보입니다.
“플라스틱 업계에서 플라스틱이 생분해한다고 주장하는데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습니다. 그런 주장이야 말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라고 봅니다. 생분해가 가능한 종이야말로 진짜 친환경 제품입니다.”
▷취임 때 제지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언급도 하셨는데요. 어떤 노력을 들이고 계십니까?
“제지산업이나 종이에 대한 인식개선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종이가 기록물과 정보 전달 도구로 시작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에도 쓰이고, 나노셀룰로오스라고 펄프에서 유래한 친환경 첨단 소재도 있습니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에선 종이가 어떻게 쓰이나요?
“공조 설비의 열교환 장치가 종이 기반입니다. 자동차의 소음을 막는 소재에도 쓰이고요. 포장 소재 역할도 하는데, 반도체 하나하나를 전부 다 포장하는 단위 포장재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손실 방지용 포장재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철강산업에서도 사용합니다. 고급 스테인레스 표면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테인레스 사이사이에 전부 다 종이가 들어갑니다. 일반인들은 모르는 종이의 역할이 굉장히 많습니다.”
▷최근 저가의 동남아와 중국의 제지회사들이 화장지 등 위생용지를 ‘반제품’ 형태로 국내에 들여와 가공업체만 거치면 국산으로 둔갑한 사례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어떤 대책을 강구하고 계신지요?
“화장지와 같은 위생용지는 관리 규격이 굉장히 엄격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의 위생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의약품은 철저히 위생 관리를 하지 않습니까.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화장지나 위생용품은 철저한 관리 규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남아나 중국에서 생산되는 건 그렇게까지는 엄격한 규격을 적용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위생에 관련된 것도 철저히 검토를 해줘야하는데 지금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위생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산지 표시 등을 더 강화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복사용지는 국내 제조사가 딱 한 곳 남았습니다. 복사용지에 이어 위생용지까지 국내 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제지 산업도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제조 기반이 무너지면 결국은 수입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지산업이 굉장히 취약합니다. 수입품이 완전 장악하게 되면 우리가 가격 결정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다음에 위기가 닥치면 제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됩니다. 2년 전 요소수 사태가 말해줍니다. 까딱 잘못하면 화장지가 지금 그럴 위험에 처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국내 제조업 기반을 꼭 유지해야 합니다.”
▷처음 제지업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1976년 대학에 들어갔는데 당시엔 펄프·제지산업이 막 성장할 때였습니다. 종이에 매력을 느껴서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1984년 한국제지 입사를 시작으로 평생 제지업계에 몸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제지업이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제지 부흥기에 더 확실한 성장 기반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제지 회사가 외국에 투자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중국 강소성에 국일제지 장강 유한공사가 유일합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유명한 특수지 제조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건설할 때 현지에 가 있었고 이후 10년간 현지 최고경영자 역할을 했습니다. 잘 운영되고 있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향후 연합회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종이가 친환경 대체제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더 연구하고 알리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학 협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지산업이 곧 없어질 거라고 오해를 합니다. 책 등에 쓰이는 인쇄용지는 생산이 줄었지만, 다른 산업에 쓰이는 특수지와 같이 기능성 종이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지산업에 우수한 인재들이 올 수 있도록 힘을 쓰겠습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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