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에 뒤집힌 판결…마트 화재 용의자 결국 무죄

입력 2023-09-17 17:35   수정 2023-09-17 17:36


담뱃불에 의한 마트 화재 용의자로 지목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60대 마트 종업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결이 뒤집힌 덴 당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광주지법 제2형사부 재판장 김영아는 실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A씨(63)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4월 24일 오후 1시 42분께 자신이 일하던 전남 장흥의 한 마트를 실수로 불태운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해당 마트 옆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었다. 이곳에 보관돼 있던 종이박스 등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고, 불길이 건물 외벽과 천장 등으로 옮겨붙으면서 마트 일부를 태웠다.

마트 인근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불이 나기 10분 전 해당 골목을 지나친 사람은 종업원 A씨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1명 등 총 2명이었다. CCTV의 각도상 골목 안쪽은 촬영되지 않았다.

화재원인 감식에 들어간 소방당국은 사건 발생 당일 오후 1시41분께 이 두 명 중 한 명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골목으로 향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후 담뱃불에 의한 화재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수사기관에 전달했다.

수사기관은 A씨의 흡연을 화재 원인으로 지목해 실화 혐의를 적용했고, 1심 재판부는 A씨의 평소 흡연 습관, 수사기관에서 보인 언동, 화재감식 결과 등을 종합해 A씨가 담배를 제대로 끄지 않아 불이 났다고 판단,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A씨는 사건 당시 골목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종이상자를 정리했을 뿐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CCTV에는 A씨가 화재 발생일 1시39분께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골목으로 갔다가 1분 만에 가게로 돌아왔고, 다른 손으로 유리테이프를 챙겨 골목으로 돌아간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약 4분 50초 뒤인 46분께 다시 마트 내부로 들어오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처음 나갈 때 들고 간 아이스크림은 2분 뒤에 한 입만 베어 문 상태였다"며 "A씨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에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또 A씨가 그 와중에 테이프를 사용해 박스를 정리했다면 시간이 더욱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박스의 양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 정리에 필요했던 시간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약 4분 50초 동안 아이스크림을 먹고 박스를 정리했다는 A씨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라며 "A씨가 그 시간 동안 담배까지 피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만약 CCTV 영상에 A씨가 담배를 물고 가는 모습이 없었다면 화재 원인을 원인 미상으로 기재했을 것"이라는 화재 원인 감식 소방관의 법정 증언에 주목해 "CCTV 영상에서 A씨는 담배가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었고, 소방관이 이를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으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당시 바람이 상당히 불었고 불씨가 다른 곳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이나 다른 화재 원인을 배제할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은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기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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