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교통신호 장치를 제조하는 한길에이치씨는 20~30대 근로자가 30%를 차지한다. 3년 전만 해도 가장 젊은 직원이 40대였으나 지금은 젊은이들로 북적이며 활력이 넘친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공장을 옮기면서다. 이 회사는 산단의 낡은 공장을 팔고 안산역 앞에 들어선 지상 13층 높이의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했다. 김기현 한길에이치씨 이사는 19일 “전엔 구직자가 면접에도 오지 않았는데, 여기선 청년 채용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총 841개사가 입주한 이 건물엔 우체국, 카페, 스크린골프장, 세차장, 은행 등의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5t 트럭이 10층까지 올라간다. 층고는 6.6m에 달해 규모가 큰 제조 설비를 들여놓을 수도 있다. 입주기업 리쿠스의 조성민 이사는 “산단에 최적화된 맞춤형 건물”이라고 평가했다.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진 고밀도 복합건물이 노후 산단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할 ‘미래형 산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업 환경이 개선되면서 청년 근로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조고도화 사업을 통해 공동물류센터 야적장 부지에 민간투자를 유치해 2017년부터 오피스텔, 기숙사·어린이집. 지식산업센터 등을 차례로 지었다. 스마트업 파크엔 경상대, 경남대, 마산대의 기계·전기관련학과가 개설된 산학융합원도 있어 활발한 산학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곳을 매개로 한 청년 채용도 빈번하다. 마산대 스마트전기과에 다니던 김동윤 씨(29)는 지난해 창원의 나산전기산업에 취업했다. 그는 “기업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취업하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반월산업단지 서해선 원시역 인근에는 지상 14층 높이의 ‘안산 KDT 지식산업센터’가 오는 12월 들어선다. 제조시설과 편의시설, 오피스텔 등으로 구성된다. 인근 E제약회사 직원은 “야근할 때 간식 사 먹을 곳조차 없었는데 편의시설이 많이 들어온다니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려면 아파트 재개발 수준의 획기적인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성훈 강원대 교수는 “산단은 공장과 일자리 기능만 강조한 1970년대 코드에 머물러 있지만 근로문화는 완전히 바뀌었다”며 “청년들을 유인하려면 산단의 기반 시설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산업단지 입지 킬러 규제 혁파 방안’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산업시설과 지원시설이 함께 들어가는 복합용지 신설을 간소화하고, 이를 위한 토지의 용도 전환을 최대 10만㎥로 확대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내년엔 1868억원 규모의 정부 펀드를 조성해 1조원의 민간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김효 산업통상자원부 입지총괄과 사무관은 “대규모 재개발 사업 절차를 간소화해 사업 기간을 2년 정도 단축하고, 구조고도화 사업 대상 면적도 10%에서 30%로 확대해 민간투자를 촉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로공단에서 도심형 고밀복합지역으로 ‘상전벽해’한 서울디지털산단도 이런 수순을 밟았다. 정부는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촉진하기 위해 자금 및 세제 지원을 통해 민간 사업자의 부담을 줄여줬다. 이원빈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인허가나 토지용도 변경 절차를 간소화한 만큼 민간을 중심으로 한 개발 행위가 활발해지면 산단의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원·안산=이정선 중기선임기자
한경·한국산업단지공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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