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을 쪄 꿀에 재서 오래 두고 먹는 ‘인삼 꿀절임’을 안 건 대학 다닐 때였다. 해 뜨기 전 곤한 잠을 깨운 건 아버지였다. 가족들 깨지 않게 조용히 따라오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간 게 경동시장. 가게 문을 열기 전이라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버지는 이전부터 아는 집처럼 쉽게 인삼가게를 찾아들어 갔다. 주인이 문 여는 걸 도와주며 꿀에 잴 인삼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바로 “어제 들어온 최고 삼”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달라는 대로 대금을 치렀다. “어머니 드릴 약이라 깎으면 부정 탑니다”라자 주인이 고맙다며 대신 인삼을 따로 좀 싸줬다.
어머니에게 할머니께 드릴 거라고 하자 마뜩잖은 표정으로 인삼을 씻고 찌면서 내내 군소리를 했다. “인삼은 이렇게 크고 굵은 거보다 좀 가늘고 작은 게 약효가 더 있다. 이 많은 걸 노인네가 은제 다 드시겠냐? 옛말에 인삼 많이 먹으면 죽을 때 고생한단다. 한 푼도 안 깎았지? 이런 거는 인삼을 아는 내가 사야 제대로 된 실한 놈을 사는 건데 형편 모르는 양반이 헛돈 쓴 거다”라며 아쉬워했다. 고향 큰댁에 계시는 할머니께 드리려고 가는 보자기에 싼 인삼 꿀절임은 몇 걸음 걷고 나서 손을 번갈아 들 만큼 무거웠다. 보자기를 풀고 아버지가 인삼을 꺼내 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연신 웃으며 “나이 든 분들 면역력을 키우는 데는 이게 최고”라고 몇 번이나 말씀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흡족해하며 고사성어 ‘육적회귤(陸績懷橘)’을 입에 올려 당신의 어머니께 드린 인삼 꿀절임의 의미를 새겼다. 이 성어는 육적이 여섯 살 때 아버지 육강(陸康)과 함께 당대의 명문거족 원술(袁術)을 만났을 때 육 씨 부자에게 귤을 대접한 일화에서 비롯했다. 육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몰래 귤 두 개를 자신의 품속에 넣었고, 나가면서 인사하다가 그만 귤이 떨어져 굴렀다. 원술이 육적에게 “육랑(육적을 가리킴)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느냐”라고 물었다. 육적은 “집에 돌아가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라자 원술이 어린 그의 효심에 감동해 귤을 더 싸줬다.
훈훈한 일화이지만 이후에 원술은 군량 요청을 거절한 육적의 아버지 육강에게 화가 나 손책을 시켜 육강을 공격하게 한다. 귤을 주고 아버지의 목숨을 뺐었다. 육강은 일족을 모두 오현으로 피난시키고 자신은 함락된 성에서 죽었다.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에 나온다. 육적은 용모가 웅장하고 박학다식해 천문, 역법, 산술 등 읽지 않은 것이 없는 오나라의 인물이나 애석하게 32세에 죽었다.
그런 설명을 길게 한 데 이어 아버지는 “"'효도 효(孝)'자는 파자(破字)하면 ‘늙을 노(?)’자와 ‘아들 자(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子자가 ?자 아래에 있으니 아들이 노인을 등에 업은 것과도 같다. 어른을 모시는 것이 효의 근본이라는 것을 말하는 글자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다시 육적을 거론하며 “여섯 살짜리가 효를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 효를 본능이라는 주장도 많지만, 실은 학습이다. 가르쳐 알 게 해야 한다. 육적의 아버지의 가르침이 필시 육적회귤을 낳았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중요한 윤리적 가치로 여겨져 왔다. 유교는 효를 인간의 기본 덕목으로 강조하고, 불교도 효를 중요한 수행과제로 삼았다. 효의 정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해 왔다. 부모의 뜻을 따르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모든 행동이 효라는 설명을 더 길게 한 뒤 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선물에 대한 보답은 ‘회귤’정도로는 안 된다. 결국 효도는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모든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효도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생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효도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이지만, 그 의미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된다”며 효도는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랑을 나타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이어 “효심은 효도를 실천하는 동력이다. 효심이 있는 사람은 부모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효도는 본능과 습득이 함께 작용해 형성된다. 인간은 본래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마음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효를 제대로 실천할 수 없다”며 꾸준한 실천을 당부했다. 아버지는 “효는 효심에서 나오고 효심은 가르쳐야 하는 거다. 효는 실천이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효심은 손주들이 여섯 살이 넘기 전부터 일일이 가르쳐 물려줘야 할 덕목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