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왜 개를 기르죠. 사람도 못 먹고 사는 판에 개가 다 무슨 의미입니까. 차라리 직접 가난한 사람들이나 복지단체에 기부를 해요."
1993년. 삼성이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자 이런 비판이 일었다. 비판에도 보란 듯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안내견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지금은 현실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거나, 바보라는 비난을 듣지만 수십년이 지난 다음에는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안내견 사업이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안내견의 전 생애를 함께한 사람들도 행사에 자리했다. 안내견의 아기 강아지 시절부터 은퇴 이후까지 곁을 지키며 안내견 제도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안내견이 될 강아지들은 태어난 후 두 달이 지나면 가정집으로 입양돼 1~2년 간 사람과 생활하는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선발된 '퍼피워커 자원봉사자'들이 이 역할을 맡는다. 사회화된 예비 안내견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훈련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안내견이 된다. 이후 시각장애인 파트너에게 입양돼 7~8년을 활동한 후 은퇴한다. 은퇴 후에는 세번째 가족에게 입양돼 10년 가까이 노후 돌봄을 받는다. 퍼피워킹과 은퇴견 돌봄을 도운 자원봉사 가족은 지금까지 2000여가구가 넘는다.
행사에서 안내견 분양식이 진행되자 안내견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퍼피워커 자원봉사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단군 단풍 대한 미지 존경 칸토 케미 쿠키까지 8마리의 안내견이 퍼피워커 가정을 떠나 시각장애인 파트너에게 입양됐다. 안내견 '미지'의 어린시절을 함께 한 퍼피워커는 "집에서 목욕하기 싫다고 떼 쓰던 철부지 딸 같던 네가 교육을 수료하고 안내견이 됐다니 자랑스럽다"며 "우리 가족에게 선물로 왔던 미지를 파트너님께 선물로 보내려 한다"고 했다.
안내견 '케미'를 입양 받은 시각장애인 최경은씨는 "케미가 오기 전에는 남편이 항상 나를 사무실까지 데려다주곤 했는데, 이제 케미와 함께라 내가 남편을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며 "새로운 곳에 가면 한발 내딛기가 두려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3년 신경영 체제를 선언한 후 같은해 설립했다.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안내견 학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안내견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삼성이 개를 기르는데 돈을 쓴다고 하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선대회장은 안내견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복지재단이 아무리 많아져도 정작 장애인이 실제 거리에 나설 때 일반인들의 눈이 차갑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지 사회가 아니다”라며 "인식과 관습을 바꾸는 문화적 업그레이드야말로 사회 복지의 핵심이고, 그것이 기업이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재투자"라고 했다.
또 "잔잔한 연못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심정으로, 우리는 안내견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며 "세상의 두텁고 완강한 고집과 편견 때문에 안내견 '슬기'나 '대부'나 '태양'이가 더 이상 풀이 죽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계속 내보낼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30년 사이 우리 사회에는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1995년엔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비행기 탑승에 성공했다. 삼성 직원들이 해외 사례와 국제법 자료를 가지고 항공사를 설득한 결과였다. 1996년엔 초등학교 교과서에 안내견에 대한 설명이 실렸고, 2000년에는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서 안내견의 출입이나 탑승을 거부하면 처벌받도록 법이 개정됐다.
그 사이 삼성은 총 280마리의 안내견을 배출했다. 1994년 첫 번째 안내견 ‘바다’를 분양한 이래 매년 12~15마리의 안내견을 분양하고 있다. 현재는 76마리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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